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안부-나호열-

불량아들 2021. 12. 27. 15:48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02)

 

안부(安否)

나호열(1953~ )

 

안부를 기다린 사람이 있다

안부는

별 일 없냐고

아픈 데는 없냐고 묻는 일

안부는

잘 있다고

이러저러하다고 알려주는 일

산 사람이 산 사람에게

산 사람이 죽은 사람에게

고백하는 일

안부를 기다리는 사람과

안부를 묻는 사람의 거리는

여기서 안드로메다까지 만큼 멀고

지금 심장의 박동이 들릴 만큼 가깝다

꽃이 졌다는 슬픈 전언은 삼키고

꽃이 피고 있다는 기쁨을

한 아름 전하는 것이라고

안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날마다 마주하는 침묵이라고

안부를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안부는 낮이나 밤이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리지 않고

험한 길 만리 길도 단걸음에 달려오는

작은 손짓이다

어두울수록 밝게 빛나는

개밥바라기별과 같은 것이다

평생 동안 깨닫지 못한 말뜻을

이제야 귀가 열리는 밤

안부를 기다리던 사람이

내게 안부를 묻는다

기다림의 시간이 구불구불

부끄럽게 닿는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02번째 시는 나호열 시인의 안부(安否)”입니다.

 

벌써 1년이나 지난 일입니다. 살다보면 사는 게 시들해지고 의욕과 밥맛이 없어질 때가 있습니다. 밥맛이 없을 때만큼 삶에 대한 의욕이 사라지는 것도 드물 것입니다. 어찌 보면 밥맛과 의욕은 정비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가 오는 데도 누구 하나 만나자는 연락이 없을 때처럼, 모든 게 심드렁해져 개인 SNS도 끊고 한 달 이상을 보냈습니다. 그날 새벽에도 잠을 설치고 있는데, 머리맡에 둔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어댑니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옆옆 구에 사는 K시인입니다. 새벽에 갑자기 안부가 궁금해져서 전화했다고 합니다.

수화기 너머의 반가운 목소리에 금방 활기가 생깁니다. 우리는 짧지 않은 통화 후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러곤 필자는 생기와 함께 삶의 의욕에 활활 넘쳐나는 자신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K시인이 더욱 가깝게 느껴졌던 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안부를 묻는 것은 이만큼 중요합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안부를 전하지 못하는 것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속담을 염두에 두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그러나 안부 전함이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고 나와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한다는 점을 상기할 때 안부를 전하는 것은 백 번 천 번 가치가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피어나는 꽃을 보다가, 흐르는 강물을 마주하다가, 낙엽이 뒹구는 모습을 처연하게 지켜보다가 그 모습을 누군가와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하는 안부 전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립니다.

 

안부별 일 없냐고/ 아픈 데는 없냐고 묻는 일”, “잘 있다고/ 이러저러하다고 알려주는 일이랍니다. “고백하는 일이군요.

 

오늘은 평소 가슴속에 담고 있었던, 그리운 누군가에게 안부 인사를 전하면 어떨까요. 안부 전화를 받은 상대방은 아마 벅찬 감동에 이 세상이 환해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2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