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99)
갈 사람 가느라 가을입니다만
이원규(1962~ )
봄은 환하게 다 보여 봄입니다만
그대 얼굴이 잘 안 보이니
여름은 열나게 생각만 열어 여름이고요
가을은 갈 사람 가느라 가을입니다만
코로나 19 희망도 없이
KF 마스크로 서로의 얼굴을 가리니
포옹도 입맞춤도 없이
마침내 복에 겨운 날들이 가고
지구촌의 사계는 힘겹고 지겨운 겨울
복면의 겨울은 겹고 겨워 겨우내
겨울이니
아무 반성도 없이
여전히 그대는 나의 백신입니다만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99번째 시는 이원규 시인의 “갈 사람 가느라 가을입니다만”입니다.
아침에 아내와 출근하고자 손잡고 아파트 문을 나섰는데 가을 하늘과 햇살이 그야말로 황홀경입니다. 찬란한 가을 햇살 아래 꽃들은 아름다운 모습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보이려는 듯 기지개를 한껏 켜고 있습니다. 덥지 않게 내리쬐는 가을볕은 황금들녘을 더욱 기름지게 하고 밤송이를 활짝 열어젖히겠지요. 이런 날은 모든 걸 잊고 시골 들녘으로 달려가고픈 마음뿐입니다.
이런 날이 어디 가을뿐이겠습니까. 온갖 꽃들을 지상에 내려 “봄은 환하게 다 보여 봄”이고 “여름은 열나게 생각만 열어 여름”이랍니다. “가을은 갈 사람 가느라 가을”이군요. 그러나 어찌합니까. 코로나 19라는 복병이 우리 삶을 “포옹도 입맞춤도 없이” 참 힘겹게 합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분명 누군가의 잘못이라든지, 판단 착오가 있었을 것인데 “아무 반성도 없이” 우리의 삶은 “겨울” 아닌 겨울을 맞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우리가 이겨내야 할 또 다른 삶이 아니겠습니까.
지구상에 “그대”가 있기에 이 세상은 다시 살만한 세상이 됩니다. “복면의 겨울”을 이기고 다시 살아갈 힘을 “나의 백신” “그대”에게서 찾습니다.
“갈 사람”이 가을에도 가지 않고 다시 내게 돌아오길 기다려 봅니다. 그대가 그리운 힘겨운 가을입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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