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96)
애인처럼 순두부
고은진주(1967~ )
몽글몽글 뭉쳐지기는 하겠지만
굳어지지 않겠다, 는 확고한 내용이다
간수하겠다는 뜻이다
순순한 콩물에
밀물 들듯 뭉쳐지는 모양
이제야 간을 만났다는 환호성이다
보드라운 한 입맛이 되었다는 선언이다
말랑하면서도 울렁거리는
풍랑이 건네준
믿지 못할 수심이다, 순두부 한 숟가락
양념장 얹어 푹 퍼먹으면
울돌목 소용돌이와 달의 재잘거림
머리 끄덕이며 알 수 있다
조목조목 씹으면 저 먼 빙하 맛이 난다
굳이 숟가락 필요 없이
훌훌 들이마셔도
아무런 뒤탈 없는 두부들 세계에서
순하디순한 애인 같아 보여도
모 안에 엉키거나 엉기지 않으려는
순두부, 연한 꿍꿍이가 말캉말캉
살갑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96번째 시는 고은진주 시인의 “애인처럼 순두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음식만큼 생의 행복함을 충족시켜주는 것도 드물 것입니다. 모내기를 하다가 새참으로 어머니께서 이고지고 내오신 멸치국수 맛은 평생 잊기 어려운 맛입니다. 이뿐이겠습니까, 한 겨울 뒤란 땅 속에 묻어놓은 항아리에서 꺼내어, 찐 고구마와 함께 먹는 동치미 맛은 그야말로 둘이 먹다가 셋이 죽어도 모르지요. 할머니 몰래 벽장에서 꺼내 먹었던 꿀단지 속의 꿀맛은 또 어떻던가요.
이런 맛은 요즘 젊은이들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입니다. 갑자기 맛 타령으로 빗나갔습니다.
현대인이 즐겨먹는 음식 중 하나가 맛과 건강에 좋은 두부입니다. 두부를 콩을 주원료로 합니다. 콩을 충분히 물에 불린 다음 곱게 갈아서 솥에 넣고 끓인 후 걸러내는 것이 두부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그 후 간수를 얼마나 잘 배합하느냐에 따라 두부의 맛이 결정됩니다. 따라서 간수의 양 조절은 두부를 만드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사랑도 매한가지입니다.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할 때 “밀물 들듯 뭉쳐”져 “보드라운 한 입맛이 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안에 엉키거나 엉기지 않으려는” 노력이 두 사람 사이를 더욱 견고하게 합니다. 음식이나 사랑이나 배려가 밑바탕이 되어야 깊은 맛을 내고 오래 갑니다.
콩이 두부가 될 때 간수의 조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처럼 우리 사랑에도 간수 같은 조절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순두부처럼 “말캉말캉”한 “애인”같은 사랑을, 애인처럼 “순하디순한” 순두부 같은 맛을 진정으로 느껴볼 일입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1년 7월호, 창간 22주년 기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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