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05)
급훈 뒤집기
박완호(1965~ )
급훈
고개를 들어 별을 보라.
숙여서 발을 보지 말라.
당연하다는 듯 누구에게나
별을 보라고, 별만 보라고
서로 얼마나 다그쳐왔던가?
되려 이제는 고개 숙여 발을 보라고,
제 발에 뭐가 묻었는지
어디를 무엇을 밟아가며
여기까지 걸어왔는지를
똑바로 들여다봐야 할 때
멀리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든 제대로 가기 위해선
별을 올려보듯 발을 봐야 하리
고개 숙여 제 발을 보는 사람만이
마음속에 뜨거운 별을 마주치게 되리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05번째 시는 박완호 시인의 “급훈 뒤집기”입니다.
초등학교를 비롯한 중학교, 고교 시절은 삶의 지표를 세우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담임선생님이나 각 학과 선생님들의 언행은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평생을 지배하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연극과 대본 쓰기를 좋아하셨던 담임선생님 덕분에 시골 촌뜨기였던 필자는 연극반 학생들과 서울로 연극을 하러 오기도 했습니다. 그때 처음 맛보았던 냉면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고, 창경궁의 기린과 많은 동물들은 별세상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했습니다. 남산에 올라 바라보았던 서울 풍광은 벅찬 가슴을 진정시키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중학교 시절의 급훈이었던 ‘근면 성실 협동’은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지표가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의 교훈은 ‘기술인은 조국 근대화의 기수’였습니다. 졸업 후, 국가의 산업 역군이 되지 않으면 빚지며 살아가야 할 것처럼 여기던 시절이었습니다.
여기에 비하면 “고개를 들어 별을 보라./ 숙여서 발을 보지 말라.”는 급훈은 참으로 낭만적으로 느껴집니다. 문제는 낭만이 현실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 아니 낭만이 현실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깨달음만이 우리 삶을 제대로 이끌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필요하다는 사실. “급훈”도 때로는 “뒤집”어야만 삶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교훈 아닌 교훈.
교훈을 뒤집으니 이제야 제대로 보이네요. “고개 숙여 제 발을 보는 사람만이/ 마음속에 뜨거운 별을 마주치게”된다는 것을......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2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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