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라이프 칼럼

섬이 말하고 잇는 것

불량아들 2023. 8. 1. 12:48

섬이 말하고 있는 것

 

8월 중순, ‘봉창에 문 두드리듯’ 갑자기, 뜬금없이 남해안에 자리 잡은 홍도, 흑산도, 영산도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두어 시간 만에 도착한 홍도(紅島)는 왜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는지 알 수 있는 섬이었습니다.

 

이어서 본 흑산도는 우리나라 행정구역상 최서남단에 위치해 있으며 빼어난 절경을 자랑합니다. 국내 어획량의 80%가 흑산도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니 놀라울 뿐입니다. 영산도도 경관이 수려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기자가 놀란 것은 이곳 섬들의 경관 때문이 아닙니다. 물론 세 섬이 토해놓은, 경탄을 금치 못 할 풍광은 아름다웠습니다. 아름답다 못 해 넋이 나간다는 표현이 부족할 지경이었습니다.

 

유람선을 타고 섬의 곳곳을 탐방하는 동안 섬 산줄기를 타고 해안가에 자리 잡은 작은 촌락들은 기자에게 여러 가지 상념에 젖게 했습니다. 100여 호에 이르는 어촌마을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기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두어 채 혹은 서너 채에 불과한 촌락이었습니다.

 

우선은 골짜기 마다마다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우리 조상의 끈질긴 삶이 놀라웠습니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의 땅을 지키면서 오늘날까지 그곳을 지키며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도시의 눈부신 발전에 비하면 이곳은 별천지였습니다.

 

해질 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어촌 촌로의 모습은 기자의 마음속에 무언가 뭉클함을 던져주곤 했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태초부터의 외로움의 눈빛을 등 뒤에서 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작정 촌로의 뒤를 따라 들어가 무슨 말인가 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기자는 탐방 내내 이런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기분이 어쭙잖은 동정심의 발로는 절대 아닙니다. 그것은 근원에 대한 무한의 절대적인 애정이었다고 믿습니다.

 

자연의 힘은 위대합니다. 그러나 그 자연 뒤 인간의 삶은 더 위대하고 숭고합니다. 자연이 사람을 가르치는 큰 스승이라면, 인간의 삶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회초리와도 같은 것임을 다시 한 번 각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도도히 흐르는 역사 앞에 지금 우리의 삶을 반추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외딴 섬의 곳곳에서도 우리의 역사는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완근(편집국장, alps0202@hanmail.net)

 

 

 

육지에서는 보이지 않는

외딴 섬

골짜기마다

집이 두어 채

날이 밝으면

섬만 외로운 것이 아니라

구름이 외로워서

사람이 외로워서

지나가는 여객선은

숨을 죽였다

 

<뷰티라이프> 2022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