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도원 님....

불량아들 2006. 4. 18. 13:19
도원님!!!

빙도 오빠가 아침에 사무실로 전화를 했더군요.
"왕그나 큰일났다. 우리 비행이 전부 들통났다.
빨리 행장 꾸려서 뜨자."
뭔 뜽금없는 소린가 했습니다.
요 연세(?) 묵도록 천사같이 살아온 왕그니에게
비행이란 말이 어디 합당한 말이기나 하단 말쌈입니까?

자초지종 야그를 듣고 헐레벌떡 참으로 오랜만에
빙도 오빠집에 마실을 왔습니다.
왕그니가 바깥바람을 쪼까 쐬는 사이 많은 분들이
주옥같은 글들을 남기셨네요.

역쉬 가을은 인간들 맴을 싱숭생숭하게 하는
무신 마력같은 힘을 가지고 있나 봅니다.
왕그니는 가을 아침바람에 까르르 까르르 펄럭이는
포플러 잎사귀를 무엇보다 사랑하지요.
어린이들을 좋아하는 왕그니는 바람에 나부끼는
그 조그만 잎새들이 아이들의 함박웃음으로
병치되곤 하지요.
대학시절, 가을 저녁무렵 기차를 타고 가다 보았던,
황금빛 들녁을 따라 걷던 교복 입은 소녀의 모습도
가끔은 생각나곤 합니다.
성공한 인생은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간직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요즘은 사는 데 얽매여 아름다움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지요.

언제나처럼 어제도 술을 마셨습니다.
웬수같은 술, 영혼을 갉아먹는 술, 그러나 다정한 술...

잊기 위해
오늘도
술집을 찾는다
찰랑거리는 술잔으로
너를 잊으리라-
다짐하지만
소주잔 속
소주의 투명함 만큼이나
더욱 또렷해지는
네 모습

-컴퓨터 화면 지우듯
그렇게 쉽게 잊을 수는 없을까-

잊어야지, 잊어야지
다짐하며
오늘도 술집을 찾는다만
절망의 깊이 만큼
찰랑거리며 넘쳐오는
그리움

술집 속에, 술잔 속에
너를 버리지 못하고
가슴 한 구석 그리움만 키운 채
오늘도
술집을 나선다

언젠가 이렇게 끄적거린 적이 있지요.
웃기는 시키지요, 왕그니는.
시시한 시 몇 자로 원고지 매수를 메꾸려 하다니...

지가 요사이 술 묵자고 꼬시는 스키들이 많아서리
빙도 오빠집 마실이 주춤했습니다.
앞으론 자주 들러서 광도 팔고 그러것습니다.

2002.8.31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더위가 성깔 깨나....  (0) 2006.04.18
빗소리  (0) 2006.04.18
삼행시..  (0) 2006.04.18
동네 사람들, 빙도 좀 말려줘요...  (0) 2006.04.11
살다보니 이런 횡재가....  (0) 2006.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