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법수치리의 맑은 물소리 들리네

불량아들 2006. 7. 10. 11:54

토요일, 아침 일찍 신조 김사장님을 만나서 강원도로 향한다.

만 3년 만이다.

3년 전의 기억이 오롯이 떠오른다.

2박 3일 중 생각나는 건 단 하루뿐이다.

나머지는 술과 함께 사라져버렸공.

이번에는 아름다운 풍광을 가슴속에 맘껏 담아오리라....

 

법수치리 가는 길은 감탄 그 자체다.

감자꽃을 보며 환호성을 지르고,

소주와 같이 투명한 냇물을 보며 흥얼거리다

도착한 곳이 주문진.

 

우선 팔딱 팔딱 기운이 좋아보이는 광어 한 놈과

해삼, 멍게를 시켜 놓고 늦은 점심 겸 쐬주를 한 잔씩 한다.

얼굴이 발그레레해서야 차에 오른다.

앞으로 40여 분은 더 가야 한다.

 

여기서부터가 더 환상적이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냇물은 냇물대로 자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객들을 맞는다.

우거진 찻길 옆 덤불에는 산딸기가 발그레 발그레 부끄럽게 대롱대롱.

잘 익은 것으로 몇 개를 따서 입안에 넣으니 어릴 적 그 맛 그대로다.

우람한 적송을 보는 눈도 즐겁다.

'강원도 적송은 부끄럼을 많이 타서 더 붉을 것이다.'고 객적은 소리를 한다.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법수치리.

자연이 그대로 살아 있는 곳.

민간인 소유의 마지막 땅,

소나무의 기품이 살아 있는 곳,

수달이 새끼를 키우고, 어미 물오리가 한 줄로 새끼들을 데불고 유영하는 곳,

원앙은 끼리끼리 즐겁고, 맑은 물빛을 닮은 산천어는 물과 한 몸이 되어 흐른다네.

 

3년 만에 재회한 별장은 초기의 어설픔은 온데 간데 없고

매끔하게 잘 치장하고 있다.

터는 더 넓어지고, 분수대는 시원한 물줄기를 하늘을 향해 연신 쏘아대고 있고

앞 마당은 잔디에게 자리를 다 양보하고 있다.

 

1초가 아까울 세라 반바지에 고무장화로 갈아 신고

어깨에는 어망을 둘러메고 냇가로 향한다.

소주 몇 병, 주문진에서 남은 횟감과 초장을 대동했음은 물론이다.

천렵이다.

깊은 골짜기임에도 불구하고 별장 앞을 흐르는 냇물이 작은 강물 못지 않다.

그물을 길게 쳐놓고 소주를 마시며 세월을 낚는다.

음담패설을 낚는다.

자잘한 행복을 낚는다.

 

흐르는 건 시냇물만이 아니다.

땀도 씻겨 내려가고, 근심도 씻겨 내려가고,

오르는 건 취기뿐이다.

산천어 12마리가 걸렸다.

냄비 속 민물탕 대신 분수대 연못에 방생한다. 기세등등하다.

 

텃밭에서 직접 키운 고추, 오이, 상추를 한 바가지씩 따온다.

산에서 채취한 나물이며 송이까지 진수성찬이다.

물곰탕을 국 삼아, 안주 삼아 저녁을 먹는다.

 

술 저장고에는 손수 담은 각종 과실주, 약주가 40여 통이나 있다.

송이주, 매실주, 돌복숭아주, 가시오가피주, 더덕주, 알쏭달쏭한 술까지....

한 주전자씩 담아다가 몇 주전자까지 마시나 시험해보자고 한다.

결국 일곱 주전자까지 마신다. 아깝다, 더 마실 수 있었는데...

호기롭게 잠이 든다.

 

담날, 아침 먹으라는 사장님 성화에 부시시 눈을 뜬다.

좋은 술, 맑은 공기 덕분인지 몸이 가뿐하다. 신기하다.

반찬이 어제 저녁의 재판이다. 배가 남산만해지도록 먹는다. 크으윽~~~

 

차를 몰아 <가진항>으로 간다.

물회와 해삼, 멍게를 앞에 놓고 소주를 마시려는데

참나, 소주 맛이 없다. 도저히 마실 수 없다.

어젯밤에 마신 담근 술 때문에 입맛이 고급이 되었다.

 

"클났네요, 앞으로 한 3일은 그냥 술은 못 마실 것 같아요."

 

한바탕 웃음 잔치다.

 

소주 반 병을 그대로 놔두고 가진항을 떠난다.

차를 달려 <통일전망대>까지 간다.

맑은 동해가 보이고 외금강이 지척이다.

아, 저기가 북한 땅인데....

 

서울로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보이는 달이 깨끗하기 그지없다.

법수치리의 맑은 풍광은 어느새

내 눈도 그곳의 청초함을 닮게 했나보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거실에 누웠는데

새벽까지 법수치리의 새소리, 개울물 소리, 개구리 소리 들리데....

 

    2006.7.10.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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