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라이프 칼럼

신발 공장 라이벌

불량아들 2008. 1. 18. 10:08

신발 공장 라이벌

 

며칠 전입니다.

지방에서 미용을 하시는 원장 한 분이 전화를 했습니다.

대뜸 며칠 내로 서울로 올라갈 테니 술이나 한 잔 사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마’ 라고 대답했고 그젯밤 서울로 올라온 그 원장과 술집에서 밤을 새다시피했습니다.

지부 활동을 하는 그는 한 달 전쯤 가격을 터무니없이 내린 같은 구역의 원장과

대판 설전을 벌였고 지금은 누가 이기나 보자며 같은 구역의

모든 미용실이 요금을 대폭 내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울화통이 터져서 미용을 때려치울까 하는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든다는 하소연이었습니다.

그 원장의 미용에 대한 자존심을 잘 알기에 기자는 술잔만 홀짝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곤 서울까지 찾아온 그에게 한 마디라도 해주어야 할 것 같아서

꼬부라진 혀로 얘기를 하나 해주었습니다.

 

잘 나가는 신발 공장 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회사의 매출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 사장은 회사 간부들에게 자기 회사의 가장 큰 적이 어느 회사인지 알아보도록 지시를 내렸습니다.

간부 회의에서는 다른 신발 공장을 가장 큰 라이벌로 지적하는데 주저가 없었습니다.

가까운 다른 공장에서 가격을 내리고 있으니 그 공장이 최대 라이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장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다른 신발 공장보다는 거리에서 뛰어놀 젊은이들을 좁은 공간 안으로 끌어들인 PC방이

그 신발 공장의 가장 큰 적이라고 간부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곤 젊은이들을 거리로 나오게 할 방법을 이웃 신발 공장과 협력해서 찾으라고 명했습니다.

얼마 후 그 신발 회사는 길거리 농구 대회를 다른 신발 회사들과 협력해서 유치하는 등

젊은이들을 거리로 뛰어나오게 했습니다.

매출이 다시 상승한 것은 뻔한 결과였구요.

 

지방의 원장은 술이 확 깨더라고 점심을 먹으며 제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내려가야겠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런 그가 여간 미더운 게 아니었습니다.

오랜만에 제대로 술값을 했다고 기자는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시선을 더 크게, 다르게 보면 해답은 우리 곁에 있습니다.

불황이면 불황일수록 미용 교육을 하는 사람들은 교육하는 사람들끼리

재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디자이너들은 디자이너들끼리

새로운 시술 메뉴를 개발한다거나 앞선 기술을 습득해 나간다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입니다.

미용인의 최대 라이벌은 같은 미용인들이 아니라

미용 영역을 침범해오는 의사들이며 한의사들입니다.

말처럼 쉬운 것이 결코 아닐 테지만 어려운 때일수록 눈을 크게 떠야 합니다.

생각을 바꿔 뒤돌아보면 껴안아야 할 동료들이 수없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미용인들끼리 껴안읍시다. 껴안고 불황을 이겨냅시다.

 

오늘 아침에 그 원장으로부터 전화가 또 왔습니다.

저녁에 같은 구역 미용인들과 회의를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신발 공장과 같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기자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반성문

 

야야,

고생헌다, 사노라고

 

아니,

술 묵느라고

 

새벽마다

나에게 쓰는

 

<뷰티라이프> 2008년 2월호

'뷰티라이프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에 기대어  (0) 2008.03.19
숭례문 화재가 주는 아픔  (0) 2008.02.19
쥐띠 해를 맞이하여  (0) 2007.12.24
송년호에 기대어..  (0) 2007.11.19
꽃 혹은 미용인을 위한 서시  (0) 2007.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