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라이프 칼럼

가을날

불량아들 2009. 9. 25. 10:25

               가을날

 

참 좋은 계절, 가을입니다.

‘천고마비’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가을은 풍요로움과 함께 넉넉함을 우리에게 안겨줍니다.

우리 나라에 사계절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면서도

특히 가을은 그 강도 면에서 다른 계절에 비해 감흥이 큰 것이 사실입니다.

오버 코트 깃을 세우며 낙엽 길을 걷는 영화배우의 모습은 뭇 남성들의 로망이 되기도 합니다.

 

가을은 색(色)의 계절입니다.

만산홍엽. 가을의 색은 봄의 색깔과 그 기품 면에서 다릅니다.

봄의 색이 화려함을 강조한다면 가을의 색은 찬연함이지요.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시나브로 익어가는 가을의 빛깔, 이보다 더 무엇이 장엄하리요.

봄이 시골 색시의 화려한 결혼식이라면 가을은 신라 성골, 고귀한 왕의 즉위식이지요.

황금빛 가을 들녘은 또 어떻습니까!

봄, 겨울, 여름의 수고로움을 한꺼번에 보상하려는 듯이

가을 바람에 넘실대는 가을 들녘은 그야말로 황금물결에 다름 아니었지요.

세상의 그 어떤 위대한 미용가도 흉내낼 수 없는 가을이 만드는 색으로의 향연, 진정 가을은 색의 계절입니다.

 

가을은 소리(音)와 향(香)의 계절입니다.

포도 위를 ‘또르르’ ‘또르르’ 뒹구는 낙엽 소리와 나뭇잎이 물들며 내는 소리,

온갖 풀벌레들의 작고, 깊고, 아늑한 어울림까지...

벌초를 하다가, 수수깡을 베다가, 참깨를 털다가 맡게 되는 향내는 또 무엇에 비견하리요.

이른 새벽의 알밤 떨어지는 소리, 노란 호박이 다 익었다고 내는 신호,

살갗을 희롱하며 스쳐가는 가을 바람의 상큼한 음향. 가을은 분명 소리와 향의 계절입니다.

 

가을은 정(情)의 계절입니다.

고추를 따다가, 벼를 베다가 지나가는 이웃들에게, 나그네에게 어서 오라고 손을 까불었습니다.

밭고랑에, 논두렁에 엉덩이 걸치고 앉아 막걸리를, 새참을 맛나게 나눠 먹었습니다.

술기가 얼큰하게 오르면 곱사춤을 추기도 합니다.

덩실덩실 따라 추는 건 길손의 예의였지요.

농가 뒤뜰 장독대 옆의 감나무는 그 모습에 취해 먹음직한 홍시를 주렁주렁 매달아놓기도 했습니다.

낮은 야산에서 소에게 풀을 뜯기다가 가을날 석양을 등지고 소를 몰고 동네 어귀로 돌아오는

소년의 눈에 비친 마을의 모습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지요.

황금빛 들녘 논두렁길을 하얀 교복을 입고 하교하는 여학생의 모습,

가을 햇살은 그 뒤에서 더욱 눈부시게 부서지고 있었고... 가을은 진정 정의 계절입니다.

 

이 찬란한 가을, 우리 모두가 가을의 향연에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소소한 일상의 하소연이나 불신을 딛고 가을날의 청명함이나 깨끗함을 닮아가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가을 바람 한 점이라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참 좋은 계절, 가을입니다.

 

                                                          이완근(편집국장)alps0202@hanmail.net

 

고추잠자리

 

얼마를

달려가야

가을 식구 될까?

 

가을 햇살 아래

찬연하게

엉덩이까지 빨개진

저,

 

   <뷰티라이프>200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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