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라이프 칼럼

이 가을에 읽는 시

불량아들 2010. 10. 19. 16:58

  이 가을에 읽는 시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긴 하지만 참 좋은 계절, 가을입니다.

‘가을이 오면 모든 이가 시인’이란 말이 아니더라도 가을 세상 만물은 우리 모두를 경탄케 합니다.

이른 새벽, 아파트 공원 숲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와 함께하는 시의 맛은 그 감동의 깊이가 더 큽니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나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을,/

사무쳐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김용택-)

 

잘 아시다시피 김용택 시인은 섬진강변 시골 작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순백의 마음을 지니고 있는 시인입니다.

달이 떴는데 누군가가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같이 나누고자 전화를 했습니다.

물론 떨리는 목소리였겠지요. 막걸리를 한잔 걸쳤을지도 모릅니다.

전화를 건 사람이나 전화를 받고 그 마음을 안 사람이나 멋지고 멋지지 않습니까?

이 시를 쓴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가시지요?

세상에나 달이 떴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기자도 그런 전화 한 번 받아봤으면 좋겠습니다.

 

태풍에 무너진 담을 세우려 목수를 불렀다. 나이가 많은 목수였다.

일이 굼떴다.

답답해서 일은 어떻게 하나 지켜보는데 그는 손으로 오래도록 나무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못 하나를 박았다.

늙은 목수는 자신의 온기가 나무에게 따뜻하게 전해진 다음 그 자리에 차가운 쇠못을 박았다.

그때 목수의 손이 경전처럼 읽혔다.

아하, 그래서 木手(목수)구나. 생각해보니 나사렛의 그 사내도 목수였다.

나무는 가장 편안한 소리로 제 몸에 긴 쇠못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목수의 손 -정일근-)

 

살다보면 따뜻한 가슴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가을, 정일근 시인이 말하는 이 목수처럼 생활화된 아름다움을 지닐 순 없을까?

나는 내 이웃에, 내 가족에, 사랑한다고 믿고 있었던 모든 사물에

얼마나 진심어린 애정을 주고 있었나 반성하게 됩니다.

 

홀가분 하여라/ 홀가분 하여라/ 이 세상 떨치고 가는 길/

눈부시게 홀가분 하여라!// 봄의 입김도 뿌우연/

밭두덩 논두덩 길/ 푸른 잔디 푸성귀밭 사잇길로/

바람결 헤쳐 헤쳐/ 老松林도 굽이 돌아/

이제 가면 언제 오리/ 다신 오진 않을란다!//

홀가분 하여라/ 홀가분 하여라/둥 둥 둥/

눈부신 꽃상여/ 이 세상 떨치고 가는 길/ 홀가분 하여라!

(꽃상여 -박성룡-)

 

며칠 전, 미용계 어느 인사의 문상을 간적이 있습니다.

길지 않은 생을 살다 간 고인의 얘기를 하며 인생무상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이제 홀가분하게 천국 문을 열어제꼈으리라 소망해 봅니다.

 

온 천지가 알록달록 단장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아름다운 이 풍광, 아름답게 느껴봅시다.

사랑하는 내 가족, 내 이웃들과...

 

                                                             이완근(편집국장)alps0202@hanmail.net

 

이 가을엔

 

이 가을엔 사랑하고 싶다

목 놓아 핏빛으로 물드는 저 나무들보다

더 치열하게 사랑하고 싶다

 

이 가을엔 고독하고 싶다

갈구하다 갈구하다 결국 지고 마는 저 낙엽만큼

고독하고 싶다

 

이 가을엔 느껴보고 싶다

한 점 바람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저

나뭇잎들의 오르가즘처럼

      

   <뷰티라이프> 2010.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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