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비가 옵니다. 오는 비는 방울방울 그리움을 동반하는 법.
비만큼 우리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자연물도 많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요 며칠은 비를 주제로 한 시를 읽어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내리는 빗방울 수만큼이나 많은 추억을 간직하며 살고 있어서인지
비에 관한 시는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이란 제목을 가진 시 몇 편을 음미해봅니다. 모두가 절창입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막걸리 한 사발에 이런 시를 읊조리는 것도
하나의 피서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슴을 다친 누이는/ 오지 못할 사람의 편지를 받고/
다시 한 번/ 송두리째 가슴이 찢긴다/ 아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물/
땅에서도 괴는 눈물의/ 이 비오는 날!
(박재삼, 비 오는 날)
구름이 구름을 만나면/ 큰 소리를 내듯이/ 아,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치면서/
그렇게 만나고 싶다, 당신을./ 구름이 구름을 갑자기 만나면/
환한 불을 일시에 켜듯이/ 나도 당신을 만나서/ 잃어버린 내 길을 찾고 싶다.//
비가 부르는 노래의 높고 낮음을/ 나는 같이 따라 부를 수가 없지만/
비는 비끼리 만나야 서로 젖는다고/ 당신은 눈부시게 내게 알려준다.
(마종기, 비 오는 날)
누군가가 먼곳에서/ 흐느껴 울고 있다./
처음엔 누군가가/ 혼자서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하더니/
차차 많은 이웃을 거느려/ 울음들을 터뜨렸다./
어떤 部類의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으나/ 큰 集團들이 여기저기서/ 흐느껴 울며/ 몰려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로워서 우는 사람들이었다./
누군가 먼곳에서/ 흐느껴 울고 있다./ 처음엔 누군가가/ 조용히 혼자서 흐느끼기 시작하더니/
끝내는 하늘과 땅 그 모두가/ 목을 놓아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것이었다.
(박성룡, 비 오는 날)
그리움이란 누구에게나/ 아픔이 되는 것일까?/ 언젠가는 그대 흰 옷자락 날리며/
갈 때처럼 오리라 믿으면서도/ 나 애써 도리질함은/ 끝없이 내리는 궂은비 속에서/
혼자 보내는 오늘 하루가/ 유난히 힘겹고 서글픈 까닭이라./
사랑하는 이여./ 그대의 먼 모습 이미/ 내 가슴에 넘치니,/ 돌아와 이 눈물을 그치게 하라.
(양성우, 비 오는 날)
다시 한 번 읽어보아도 각자의 시들이 주는 그 감흥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다가 하늘에서, 땅에서,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서 눈물이 범람하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뭐, 감흥의 범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요!
감동이 많은 여름 휴가철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완근(편집국장)alps0202@hanmail.net
면도를 하며
아침에 일어나 면도를 한다
밤새 충전해 두었던 면도기를
얼굴에 갖다대자
아프리카 거목 쓰러뜨리듯 우렁찬 소리를 내는 녀석
시원한 삶의 현장.
어제 아침
면도를 하려다가
앓아누운 할머니보다도 더 병약한 소리를 내는
전기면도기를 탓했었다
초벌 모내기 논만큼 띄엄띄엄 깎였었다
며칠을 쓰기만 했던 모양
밤새 전기를 주었더니
이 우렁찬 소리
면도를 하며
사람이나 동물이나 기계나
세상에서 활동하는 모든 것들
먹은 만큼 일한다는 사실을,
준만큼 보답한다는 사실을,
안다
세상의 이치 또 깨닫는다
출근길에
머리에 띠를 둘러맨 사람들
무엇인가 더 달라고 아우성하는 모습
보인다
<뷰티라이프> 2012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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