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5)
비 오는 날
-박성룡(1932~2002 )
누군가 먼 곳에서
흐느껴 울고 있다.
처음엔 누군가가
혼자서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하더니
차차 많은 이웃을 거느려
울음들을 터뜨렸다.
어떤 部類의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으나
큰 集團들이 여기저기서
흐느껴 울며
몰려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로워서 우는 사람들이었다.
누군가가 먼 곳에서
흐느껴 울고 있다.
처음엔 누군가가
조용히 혼자서 흐느끼기 시작하더니
끝내는 하늘과 땅 그 모두가
목을 놓아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것이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다섯 번째 시는 박성룡 시인의 ‘비 오는 날’입니다.
비 오는 풍광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한 시인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까요.
그 시인과 비 오는 날 막걸리를 앞에 놓고 도란도란 얘기 나누고 싶어집니다.
살아가는 이야기도 좋고 시 쓰는 고통에 대해서 논해도 좋고 아니 적당한 음담패설이면 더 좋겠습니다.
이런,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비만큼 사람의 마음을 갈피잡지 못하게 하는 사물도 드물 것입니다.
시인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비 오는 날을 소재로 한 시들이 많습니다.
양성우 시인이 있고 곽재구, 마종기 시인 등등 참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필자는 개인적으로 박성룡 시인의 이 ‘비 오는 날’을 무척 좋아합니다.
어릴 적 시골 양철지붕 위에서 타작 소리 내듯 떨어지던 빗방울 소리는 왜 그렇게 좋던지요!
온 가족이 툇마루에 둘러앉아 부침개를 부쳐 먹으며 듣던 빗소리는 또 어떻던가요.
새벽에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창문을 때리며 내는 비, 빗소리, 빗소리......
비 오는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헤집어놓는 마법과도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빗소리는 아스라하게 흐느낌으로 다가오지요.
그 아스라함이 점점 더 다가와 마침내는 목 놓아 우는 울음소리처럼 느껴지지요.
서러워서 우는 사람도 있고, 기뻐서 우는 사람도 있겠지만
시인에게는 외로워서 우는 울음소리로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시인도 지독히 외로우니까요.
그 외로움이 마침내는 극에 달해 하늘과 땅 그 모두에게 전이되었군요.
이래서 비 오는 날은 외로움 투성이입니다.
비가 옵니다.
내 마음속에 비가 옵니다.
이런 날은 누구라도 막걸리 먹자고 전화하면 한걸음에 달려 나갈 것 같습니다.
막걸리를 마시면서 이 시를 되뇌어 보는 것도 행복의 한 자리를 만들어놓는 좋은 방법이 아닐런지요.
【이완근(시인, 월간 뷰티라이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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