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비 오는 날-박성룡-

불량아들 2013. 10. 30. 11:50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5)

 

비 오는 날

                                    -박성룡(1932~2002 )

 

누군가 먼 곳에서

흐느껴 울고 있다.

처음엔 누군가가

혼자서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하더니

차차 많은 이웃을 거느려

울음들을 터뜨렸다.

어떤 部類의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으나

集團들이 여기저기서

흐느껴 울며

몰려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로워서 우는 사람들이었다.

누군가가 먼 곳에서

흐느껴 울고 있다.

처음엔 누군가가

조용히 혼자서 흐느끼기 시작하더니

끝내는 하늘과 땅 그 모두가

목을 놓아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것이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다섯 번째 시는 박성룡 시인의 비 오는 날입니다.

비 오는 풍광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한 시인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까요.

그 시인과 비 오는 날 막걸리를 앞에 놓고 도란도란 얘기 나누고 싶어집니다.

살아가는 이야기도 좋고 시 쓰는 고통에 대해서 논해도 좋고 아니 적당한 음담패설이면 더 좋겠습니다.

이런,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비만큼 사람의 마음을 갈피잡지 못하게 하는 사물도 드물 것입니다.

시인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비 오는 날을 소재로 한 시들이 많습니다.

양성우 시인이 있고 곽재구, 마종기 시인 등등 참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필자는 개인적으로 박성룡 시인의 이 비 오는 날을 무척 좋아합니다.

어릴 적 시골 양철지붕 위에서 타작 소리 내듯 떨어지던 빗방울 소리는 왜 그렇게 좋던지요!

온 가족이 툇마루에 둘러앉아 부침개를 부쳐 먹으며 듣던 빗소리는 또 어떻던가요.

새벽에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창문을 때리며 내는 비, 빗소리, 빗소리......

 

비 오는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헤집어놓는 마법과도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빗소리는 아스라하게 흐느낌으로 다가오지요.

그 아스라함이 점점 더 다가와 마침내는 목 놓아 우는 울음소리처럼 느껴지지요.

서러워서 우는 사람도 있고, 기뻐서 우는 사람도 있겠지만

시인에게는 외로워서 우는 울음소리로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시인도 지독히 외로우니까요.

그 외로움이 마침내는 극에 달해 하늘과 땅 그 모두에게 전이되었군요.

이래서 비 오는 날은 외로움 투성이입니다.

 

비가 옵니다.

내 마음속에 비가 옵니다.

이런 날은 누구라도 막걸리 먹자고 전화하면 한걸음에 달려 나갈 것 같습니다.

막걸리를 마시면서 이 시를 되뇌어 보는 것도 행복의 한 자리를 만들어놓는 좋은 방법이 아닐런지요.

 

이완근(시인, 월간 뷰티라이프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