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새해 첫 기적-반칠환-

불량아들 2014. 1. 6. 11:58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7)

 

새해 첫 기적

반칠환(1964~ )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일곱 번째 시는 반칠환 시인의 새해 첫 기적입니다.

새해가 밝아옵니다.

어떻게 올해 계획했던 일들은 잘 마무리했으며 새해 목표들은 무리 없이(?) 세우고 계신지요?

 

한해가 저물어 갈수록 우리 마음속에는 많은 회한과 아쉬움만이 남는 것 같습니다.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꾼 것도 아니고 아프리카의 굶주린 어린이들을 구해야겠다는

목표도 아닌, 그저 가족들과 몇 번의 여행과 즐거운 외식자리를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해야겠다는 소박한 계획을 세웠을 뿐인데 이마저도 지키지 못하고 어영부영

한 세월만 축냈다는 상념, 우리 모두 거개의 생각이지요.

그러나 새날은 옵니다.

우리를 반성케 하고 다시 새로운 계획을 세워 일어나게 하는 새해 첫날은 반드시 옵니다.

날아서, 뛰어서, 걸어서, 기어서, 굴러서..... 앉은 채로 도착해 있는 묵직한 녀석도 있네요.

이러니 아등바등하지 않고 살아야겠지요.

 

그렇다고 출발선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바위가 앉은 채로 도착해 있을 수 있는 건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앉아서

그 마음을 갈고 닦았기 때문이지요.

안으로 안으로 삭이고 녹여서 불만족, 부족분이 무()가 되는 지경,

그래서 결국은 제 자리에서 빛나는 경지를 만들어내는 기적.

황새는 날고, 말은 뛰고, 거북이는 걷고, 달팽이는 기고, 굼벵이는 구르는 등

자기 노력을 다해서 새해 첫날의 기적을 만들어내내요.

 

어디 얘네들뿐이겠어요.

새들은 날아서, 바람은 신나서, 나무들은 뿌리를 통해서 한날한시 새해 첫날 한 자리에 서있겠지요.

그러니 우리도 조급해하지 않고 서두르지 말고 새해 첫날 기적의 자리에 동참해야겠지요.

돈 없다고 불평하지 말고, 술 모자라다고 불만하지 말고, 꾼 돈 못 받았다고 억울해하지 말고,

승진 못했다고 기죽지 말고, 다 털어버리고 새로운 출발 선상에 서보자구요.

내년 이 맘 때는 바위처럼 앉은 채로 도착해보자구요.

 

우리 모두 새해 첫날 기적의 주인공이 꼭 되어 보자구요.

 

이완근(시인, 월간 뷰티라이프 편집국장)

 <미용회보M>2014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