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겁나게와 잉 사이-이원규-

불량아들 2014. 3. 6. 10:46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9)

 

 

겁나게와 잉 사이

 

-이원규(1962~ )-

 

 

전라도 구례 땅에는

 

비나 눈이 와도 꼭 겁나게와 잉 사이로 온다

 

가령 섬진강 변의 마고실이나

 

용두리의 뒷집 할머니는

 

날씨가 조금만 추워도, 겁나게 추와불고마잉!

 

어쩌다 리어카를 살짝만 밀어줘도, 겁나게 욕봤소잉!

 

강아지가 짖어도, 고놈의 새끼 겁나게 싸납소잉!

 

조깐 씨알이 백힐 이야글 허씨요

 

지난봄 잠시 다툰 일을 얘기하면서도

 

성님, 그라고봉께, 겁나게 세월이 흘렀구마잉!

 

궂은 일 좋은 일도 겁나게와 잉 사이

 

여름 모기 잡는 잠자리 떼가 낮게 날아도

 

겁나게와 잉 사이로 날고

 

텔레비전 인간극장을 보다가도 금세

 

새끼들이 짜아내서 우짜까이잉! 눈물 훔치는

 

너무나 인간적인 과장의 어법

 

내 인생 마지막 문장

 

허공에라도 비문을 쓴다면 꼭 이렇게 쓰고 싶다

 

그라제, 겁나게 좋았지라잉!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아홉 번째 시는 이원규 시인의 겁나게와 잉 사이입니다.

워째 읽고봉께 겁나게 재미있고 정감 가는 시 같지요잉.

 

지난달 황금찬 시인님의 강연을 들을 일이 있었습니다.

요지는 모국어로 자기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우리 나라 문인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많은 나라 중에서 자기 나라말을 가지고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요?

더구나 일제 시대를 경험한 원로 시인의 말씀은 많은 공감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여기에서 필자는 우리말에는 풍부한 방언이 있기에 우리글이 더 살찌고

아름답지 않나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입니다.

 

안타깝게도 요즘 사투리를 자꾸 없애는 추세인데 필자는 사투리를 장려하자는 쪽입니다.

각 지방 특유의 사투리를 모은 사전을 발간한다거나

지역별 방언을 모은 많은 책들이 발행되었으면 합니다.

사투리는 표준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우리의 복잡 미묘한 심정을

가장 잘 빛나게 하는 마력이 있지요.

겁나게 이쁘다는데 누가 뿌듯해하지 않겠습니까.

엄청시리 고맙다는데 허리 숙여 맞절이라도 하고 싶어집니다.

 

지난 여름, 서울 친구 몇 녀석과 우리 시골 고향집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친구가 왔다고 고향 친구들이 서로 모여 합석해서 술자리를 가졌지요.

오랜만에 만나 격의 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광경을 보며

서울 친구들은 부럽고 부럽다고들 말했습니다.

저는 서울 친구들의 마음을 충분히 잘 압니다.

끈적끈적한 우정 사이를 서울말로는 표현하기가 참 어렵지요.

 

지나가는 나그네에게조차 손 까불어 불러모아 새참을 같이 먹는

우리네 시골의 정서가 참 그리운 요즘입니다.

그나저나 사투리로 씨부려놓은 객쩍은 시 읊조린께 겁나게 좋아부지요잉.

 

이완근(시인, 월간 뷰티라이프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