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1)
과장님 먹을 쌀
-류근삼(1940~ )
시골 버스 삼백 리 길
덜커덩거리며
과장으로 승진한 아들네 집에
쌀 한 가마
입석 버스에 실었것다.
읍내 근처만 와도
사람 북적거린다
뚱뚱한 할매
울 엄마 닮은 할매
커다란 엉덩이 쌀가마 위에
자리 삼아 앉았것다.
“이놈우 할미 좀 보소
울 아들 과장님 먹을 쌀가마이 우에
여자 엉덩이 얹노? 더럽구로!”
하며 펄적 하였것다.
“아따 별난 할망구 보소
좀 앉으마 어떠노
차도 비잡은데......
내 궁딩이는
과장 서이 낳은 궁딩이다.”
버스 안이 와그르르
한바탕 하하하......
사람 사는 재미가
이런 것이렸것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열한 번째 시는
류근삼 시인의 ‘과장님 먹을 쌀’입니다.
며칠 전에 텔레비전을 바꾸었습니다.
20년 가까이 사용해왔던 텔레비전이었으니 참 오래 썼지요.
큰 맘 먹고 요즘 불티난다는 평면 HD TV로 바꾸었지요.
다른 세상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네요.
너무 선명한 화질은 사람을 질리게 했습니다.
특히나 크게 나온 예쁜 여자 텔런트 얼굴은 민망해서 보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얼굴의 땀구멍까지도 숨김없이 나오니 고개를 돌릴 수밖에......
‘숨김없음’이 다 좋은 건 아닌가 봅니다.
그러나 여기 ‘숨김없음’이 이렇게 사람을 즐겁게 하는 일도 있습니다.
‘숨김없음’이 이렇게 사람 사는 일을 재미있게 합니다. 유쾌하게 합니다.
시골에서 과장님 만드는 일이 어디 쉽기나 합니까?
그 과장님은 학교 다닐 적, 어머니께서 소를 팔고,
어느 때는 밭뙈기까지 팔며 가르쳤을 것입니다.
과장님 되었다고 읍내에 플래카드 걸지 않았나 모릅니다.
그런 과장님 먹을 쌀에 엉덩이라니요.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할매 열받을 만 하지요.
아따 근디 반전이네요.
저 엉덩이는 과장 셋이나 만든 궁딩이라는디요.
그렇다고 재직증명서 떼오라고 우기면 우리네 어무니가 아니지요.
그저 한바탕 크게 웃지요.
그 엉덩이나 그 궁딩이나 차 안 모든 사람들 크게 크게 환하게 웃지요.
사람 사는 일 별것 있겠어요!
【이완근(시인, 월간 뷰티라이프 편집국장)】
<미용회보M>201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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