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해바라기-이윤학-

불량아들 2014. 7. 1. 13:29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3)

 

해바라기

이윤학(1965~ )                                                 

 

자기 자신의 괴로움을

어떻게 좀 해 달라고

원하지 않는 해바라기여

죽는 날까지

뱃속이

까맣게 타 들어가도

누군가를 부르지 않는 해바라기여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는 해바라기여

너 말라 죽은 뒤에

누군가 잘못 알고

허리를 끊어 가리라

너는 머리로 살지 않았으니

네 머리는 땅 속에 있었으니

뱃속을 가득 채운 씨앗들이

너의 전철을 밟더라도

너의 고통을 답습하더라도

너는 평생 동안

가장 높은 곳에

가장 먼 곳에

통증을 모셔 놓고 살았으니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열세 번째 시는

이윤학 시인의 해바라기입니다.

며칠 전에 가평에 있는 이윤학 시인의 집에 놀러갔습니다.

이윤학 시인은 가평의 한갓진 곳, 전원주택에서 자연을 벗 삼아

상추와 가지, 화초와 잔디를 다듬으며 살고 있습니다.

아, 개 두 마리도 키우고 있군요.

 

마침 찾아간 날 이웃집에서 염소 고기를 양념까지 해 주었다며

정원에서 구워먹자는 솔깃한 제안입니다.

마당 한 켠 평상에서 난생 처음 염소 고기를 먹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염소 고기가 그렇게 맛있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수박을 반으로 쪼개 속을 파먹고 그 안에 막걸리를 부어 마시는

수박주 맛은 말해 무엇 하리.

 

기분 좋게 취한 우리들은 근처의 아침고요수목원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우리 산야는 아름답디 아름다웠습니다.

술과 자연에 취한 우리들은 안나푸르나

(시인이 기르는 두 마리 개)를 데리고 뒷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유월 햇살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풍경은 눈물 나게 아름다웠습니다.

 

그때 마을 입구에, 있지도 않은 해바라기가

줄지어 피어 있는 풍광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그리곤 퍼뜩 언젠가 읽었던 이 시가 떠올랐습니다.

해바라기 씨가 까만 것은 고통을 안으로만 삭이고 삭이는

인내의 결과물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누굴 탓하거나 내색하지 않고 만들어낸 결정체!

 

우리는 집에 다시 들어와 또 막걸리를 축냅니다.

우리 앞에서 대시인은 아마추어 시인으로 전락하고

정치인들은 개보다 못한 인간으로 매도됩니다.

막걸리 안주로 오디와 보리수를 씹으며 여럿 죽입니다.

해바라기의 통증쯤은 우리 안중에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압니다.

해바라기 씨앗보다도 단단하고 부드러운 그 어떤 것이

우리 윤학 시인의 머릿속과 마음속에 똬리 튼실히 틀고 있다는 사실을......

 

이완근(시인, 월간 뷰티라이프 편집국장)

<미용회보M> 2014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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