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그날-이은숙-

불량아들 2014. 6. 16. 14:58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2)

 

그날 

-이은숙(1953~ )

 

아버지를 땅속에 파묻고

오던 날 나는

밥을 먹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열두 번째 시는 이은숙 시인의 그날입니다.

이은숙 시인은 우리에게 주자천이란 아호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 달 초순쯤, 춤 공연을 같이 보기로 한 날,

순대국집에서 작년 말에 나온

<그 해 봄바다>란 시집을 받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깨알 같은 재미를 주던 시들을 읽던 중

머리를 띵하게 치고 간 시가 이 시 그날이었습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입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죽음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라고 해야 맞겠군요.

필자가 아는 어느 여자 후배의 아버지께서는 서울의 대학병원에 입원하셔서

어머니의 극진한 병간호를 받았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그야말로 지극 정성을 다하셨다네요.

그러나 결국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고향이 광주인 관계로

장례차는 서울에서 광주로 향했다고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차안에서도 아버지를 위하여 주기도문을 외우시고

아버지를 목메어 부르시더랍니다.

이러다가 어머니께서 혼절하시기라도 하면 어쩌나 가족들이 걱정한 것은 당연지사.

결국 장지에 도착하여 장례를 치르고 물 한 모금 못 넘길 것 같던 어머니께서

밥도 잘 드시고 잠도 달콤하게 주무시는 것을 보고 염려는커녕

어머니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 때문에 허탈해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도 배가 고파 밥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고

언젠가 술자리에서 말했습니다.

 

남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팔 년 전 필자도 아버지를 여의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버지의 부음 소식을 받고 필자의 머릿속에 퍼뜩 떠올랐던 것은

내가 아버지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란 생각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집을 떠나 생활해와 독립심이 강하다고 자부해왔던

필자에게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참 의문입니다.

아버지를 잃는다는 것은 하늘을 잃는다는 것,

아마 그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밥이 먹힙니다.

아니 먹어야 합니다.

목구멍보다도 더 소중한 그 무엇이 있다고 믿고 싶은데 말입니다.

 

세월호의 여파로 나라 안이 뒤숭숭합니다.

어느 장관은 유족들 앞에서 라면을 먹었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국가의 시스템 부재를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하고,

위정자들의 도덕성을 도마 위에 올려놓기도 합니다.

금전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말하기도 하지요.

혼란스럽고 또 혼란스럽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상중(喪中)!

그러나 밥은 먹어야지요. 아니 밥에 물 말아 먹어야 합니다.

그러면 슬픈 세월은 아무렇지 않게 치유될까요?

 

이완근(시인, 월간 뷰티라이프 편집국장)

  <미용회보M> 2014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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