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불량아들의 일기

불량아들 2014. 1. 13. 11:07

불량아들의 일기

 

술을 마시다가 얼굴에 상처가 났다

아스팔트길이 꾸불꾸불 일어났다

전봇대가 갑자기 달려들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이 나이에 얼굴이나 긁고 다니다니......

사람들과의 약속도 차일피일 미루던 어느 날,

시골 어머니께서 꿈자리가 사납다며

애호박이며 고추, 고구마를 한 보따리 싸들고

우리 집을 갑자기 방문했다

오십을 넘긴 아들내미가 아직도 못 미더운 거다

왜 갑자기 오셨나며 화를 내다가

시골 얘기에 밤을 꼬박 새다가

침침한 눈으로 아들의 얼굴에 난 상처를 못 알아보는 어머니가

나는 안도가 되었다

어머니께서 시골로 돌아가시는 길을 배웅하던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가을 낙엽보다도 가벼워 보이는 모습 때문이 아니었다

잘 있으라며 주머니에 무언가를 찔러 넣어주시던 어머니

내 주머니 속에는 안티프라민이 들어 있었다

아들의 얼굴에 난 상처를 이미 보고도

못 알아보신 척하신 마음을 나는 비로소 알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는

연고만 만지작 만지작거렸다

거리를 내리 쬐는 햇볕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뷰티라이프> 201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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