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독작-류근-

불량아들 2015. 5. 27. 17:19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24)

 

독작(獨酌)

류근(1966~ )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믿는 사람은

진실로 사랑한 사람이 아니다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사람은

진실로 작별과 작별한 사람이 아니다

 

진실로 사랑한 사람과 작별할 때에는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이승과 내생을 다 깨워서

불러도 돌아보지 않을 사랑을 살아가라고

눈 감고 독하게 버림받는 것이다

단숨에 결별을 이룩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아

다시는 내 목숨 안에 돌아오지 말아라

혼자 피는 꽃이

온 나무를 다 불 지르고 운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24번째

시는 류근 시인의 독작(獨酌)’입니다.

 

독작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필자가 아는 어느 소설가는 매일 집에서 홀로 술을 마십니다.

술이라면 일주일에 8일을 마다하지 않는 필자지만

아직 음주 초보 단계인지 혼자 마시지는 않는 편입니다.

아니 혼자 마시지 않는 편이 아니라 혼자는 거의 마시지 않습니다.

 

유사 이래 물에 빠져 죽은 사람보다 술에 빠져 죽은 사람이 많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채근담에도 꽃은 반만 핀 것이 좋고, 술도 반만 취하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술은 긴장된 입이 풀리기 시작하는 해구(解口), 미운 것도 예뻐 보이는 해색(解色),

억눌려 있던 분통이나 원한이 풀리는 해원(解怨), 폭음 끝에 인사불성이 되는 해망(解忘)

4단계가 있다고 합니다.

그 중 해구나 해색 정도에서 더 넘어서지 않는 것이 주도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당들에게 이런 말이 가당키나 하나요?

 

얘기가 많이 빗나갔습니다.

여기에서는 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시인은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나 봅니다.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홀로 술을 마시며 이별에 대해 생각합니다.

다시는 이런 이별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지나간 추억을 다 잊으리라 다짐하고 다짐합니다.

러나 그럴수록 그리움은 새록새록 솟아나는 법.

 

잊으려고 술을 마시는데 함께했던 추억이 다시 떠오르는 건 무슨 이유일까요?

시인은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잡아봅니다.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믿는 사람은/ 진실로 사랑한 사람이 아니다

단번에 결별을 이룩해 주는 것이 진실한 작별이라고 말합니다.

다시는 내 목숨 안에 돌아오지 말라고 호소합니다.

혼자 피는 꽃이/ 온 나무를 다 불 지르고 운다며 봄 나무를 빗대 자기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시인이 이렇게까지 굳은 결심을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이별을 못 믿어하기에 그렇다는 것을....

 

다잡아도 다잡아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기에 남에게 이야기하지도 못하고 홀로 술을 축냅니다.

시인의 이별은 이처럼 봄 꽃 피는 것보다 아름답고 처절합니다.

 

이완근(시인, 월간 뷰티라이프 편집국장)

 <미용회보M>2015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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