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우리나라 어머니-서정주-

불량아들 2015. 7. 28. 11:48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26)

 

우리나라 어머니

서정주(1915~2000)

 

아들이 여름에 염병에 걸려

외딴집에 내버려지면

우리나라 어머니는

그 아들 따라 같이 죽기로 작정하시고

밤낮으로 그 아들 옆에 가 지켜내면서

새벽마다 맑은 냉수 한 사발씩 떠놓고는

절하고 기도하며 말씀하시기를

이년을 데려가시고

내 자식은 살려주시옵소서

하셨나니......

그러고는 낮이면

가뭄에 말라 가는 논도랑을 찾아

거기서 숨넘어가는 송사리 떼들을

모조리 바가지에 쓸어 모아 담아 가지고는

물이 아직 안 마른 못물로 가서

거기 넣어 주면서

너희들도 하느님께 사정을 하여

내 아들을 도와 살려내게 해다우

하시며

거듭 거듭 거듭 거듭 당부하고 계셨었나니......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26번째 시는

서정주 시인의 우리나라 어머니입니다.

 

부모에게 자식은 어떤 존재일까요?

어떤 인연으로 맺어졌길래 자기 목숨보다 소중한 것일까요?

 

필자가 고등학교에 다닐 적 일이었습니다.

하루는 이유 없이 생인손을 앓은 적이 있습니다.

생인손, 그 고통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왼손 검지가 욱신욱신 아프기 시작하는데 생살을 베어가는 듯한 느낌입니다.

점심나절부터 고통이 시작되더니만 저녁으로 갈수록 심해집니다.

세상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취방에서 끙끙 앓고 있는데

느닷없이 어머니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어젯밤 꿈자리가 어찌나 뒤숭숭하던지

나에게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찾아오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때 필자는 뒤통수를 무언가에게 강하게 맞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가슴속 깊이 느꼈습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어머니는 고통스러워하는 나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시고 있었습니다.

된장이며 침을 손가락에 발라주며 정성으로 매만져주셨습니다.

고통 속에서 필자는 슬며시 잠이 들었고

눈을 떴을 때 어머니는 머리맡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그리곤 생인손의 고통이 씻은 듯이 가셨습니다.

 

어머니의 정성이 하늘에 통했다고 필자는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는 모기에 물리고서도 모기를 잡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하찮은 미물이더라도 하늘로 향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흩뜨려 놓을까 저어하셨기 때문이었지요.

 

자식은 부모님의 정성으로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그러시겠지만 우리나라 어머니들은

그 정도에 있어서 최고이지 않나 싶습니다.

어머니께 안부 전화라도 넣고 싶은 해지는 저녁입니다.

 

이완근(시인, 월간 뷰티라이프 편집국장)

 <미용회보M> 2015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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