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딸을 위한 시-마종기-

불량아들 2015. 10. 23. 12:27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29)

 

딸을 위한 시

-마종하(1943~2009)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들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지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기도 하라고.’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29번째 시는 마종하 시인의 딸을 위한 시입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들에게 세상사는 이치를 알려주고 싶어 할 것입니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는 까닭입니다. 건강하기를 바라는 부모도 있을 것이고, 돈을 많이 벌기를 원하는 부모가 있을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성공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부모도 있을 것입니다.

 

이 시를 읽으며 필자는 딸이 장차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평소 애들은 키우는 건 8할이 바람이다.’란 말을 신조처럼 여기며 살아온 필자지만 딸의 문제이기에 더욱 진지하게 됩니다. 백지 한 장에 이것저것 써보았지만 정답은 이 시에 그대로 나타나 있었습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착하고 공부 잘하는 사람보다 인생을 폭넓게 살고, 깊이 있게 살 것은 명확합니다. ‘사람들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헤아려서 소외된 이웃들과 어우러져 사는 일이 얼마나 값진 삶인지를 이 시는 말합니다.

 

며칠 전에는 호주에 유학 가 있는 딸과 카톡을 하며 매번 되풀이되는 필자의 문자에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냐?”, “공부만 하지 말고 운동도 해라.”, “너무 늦게 다니지 마라.”, “아빠한테 자주 전화해라.”,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라.” 등등의 말만 있었지,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 내리는지 도시락을 가난한 친구들과 함께 나누어 먹기라든지 하는 얘기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자식 귀한지만 알았지 세상을 제대로 사는 방법을 전해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관찰을 통하여 자연과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고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갖는 것이 인생을 얼마나 살찌우고 아름답게 사는 길인지 알려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딸이 진정으로 잘되기만을 바랐지 그 답을 찾는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마종하 시인의 딸을 위한 시를 다시 한 번 읽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호주에 있는 딸에게 전화를 해서 이 시를 찬찬히 찬찬히 읽어줄 참입니다.

 

이완근(시인, 월간 뷰티라이프 편집국장)

 <미용회보M>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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