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수면사-전윤호-

불량아들 2016. 2. 11. 10:30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32)

 

수면사(睡眠寺)

-전윤호(1964~ )

 

 

초파일 아침

절에 가자던 아내가 자고 있다

다른 식구들도 일 년에 한번은 가야 한다고

다그치던 아내가 자고 있다

엄마 깨워야지?

아이가 묻는다

아니 그냥 자게 하자

매일 출근하는 아내에게

오늘 하루 늦잠은 얼마나 아름다운 절이랴

나는 베게와 이불을 다독거려

아내의 잠을 고인다

고른 숨결로 깊은 잠에 빠진 적멸보궁

초파일 아침 나는

안방에 법당을 세우고

연등 같은 아이들과

꿈꾸는 설법을 듣는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32번째 시는 전윤호 시인의 수면사입니다.

 

퇴근길에 얼싸안고 얼굴을 비벼대며 죽고 못 사는 커플을 봅니다.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혀를 끌끌 차기도 합니다. 저 커플에게 전윤호 시인의 이 멋진 시를 읊어주고 싶어집니다. 아내 사랑이 이 정도는 돼야 사나이 대장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초파일 아침에는, 절에 다른 식구들도 일 년에 한번은 가야 한다고// 다그치던 아내가 자고 있습니다. 아마도 시인의 아내는 불자인가 봅니다. 평소 틈틈이 절에 다니며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겠지요. 초파일 아침에는 가족들과 같이 힘을 합해 소원을 빌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매일 출근해야 하는 가장이기도 합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깊은 잠에 빠집니다. 삶은 그만큼 고단한 법이지요.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은 안쓰러움과 미안함뿐입니다. 아내를 평온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절에서 가족들의 안위를 위해 기도하는 아내의 마음으로 아내를 위해 기도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시인의 간절한 마음이 기발한 생각을 만들어냅니다. 아내의 적멸보궁을 위해 연등 같은 아이들안방에 법당을 세우고스스로 사천왕이 되어 수면사(睡眠寺)’를 세웁니다. 수면사서 잠든 아내의 잠은 그야말로 깊이를 알 수 없는 적멸보궁. 이내 아내의 평온한 숨소리는 마치 설법처럼 들립니다.

 

수면사(睡眠寺)’ 이 얼마나 멋진 제목입니까? 고단한 아내를 위해 수면사를 세워 보시하는 남편을 가진 아내는 참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얼싸안고 죽고 못 사는 사랑보다 집에 수면사 한 채씩 세우고 아내를 적멸보궁에 모실 수 있는 남자들이 많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이완근(시인, 월간 뷰티라이프 편집국장)

  <미용회보M>201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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