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영세자영업자로 살다-이안-

불량아들 2016. 3. 11. 11:01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33)

 

영세자영업자로 살다

-이안(1967~ )

 

 

아들놈 유치원 원비 좀 어떻게 해보려고 면사무소에 갔더니 담당이 월수입을 묻겠지요 그래, 가물에 콩 나듯 하는 원고료에 지방 라디오 방송 출연료를 얹으니 어림잡아 월 십오만 원, 연봉 한 백오십만 원 정도 되겠다니까 그이는 나만큼이나 난감한 눈빛을 위아래로 비추더니 직업 분류 칸에 이렇게 써넣는 것이었습니다

 

영세자영업

 

내 직업의 정체를 사회적으로 번역하면 아마 영세자영업, 이 비슷한 것이 되겠구나 싶었는데요, 감면 대상 저소득 확인서 받아 가슴에 품고 면사무소를 나서자니 영세한 내 노동의 밤들이 축축한 땀내를 풍기며 뒤따르는 것이었고요, 어쩌면 꽃씨가 담긴 봉투처럼 달강달강 앞장서는 것도 같았습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33번째 시는 이안 시인의 영세자영업자로 살다입니다.

 

읽다가 가슴이 먹먹해지는 시가 있습니다. 이안 시인의 이 시는 더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예술가, 특히 시인에게 부()는 언감생심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시인을 나무라거나 측은하게 대할 이유는 없습니다. 가난은 시인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 시대의 천재였던 김관식 시인은 '지긋지긋한 이 가난, 강물에 떠내려 보내고 싶다'고 했고 마찬가지 시인이었던 천상병은 만나는 사람마다 천 원만하고 손을 벌렸지만 주눅 들지 않았었습니다. 요새말로 시인들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 시를 읽고 필자의 후배 시인은 '대학 강사 잘리고 실업급여 받으러 갔는데, 수입은 다 신고하라고 해서 원고료 신고하려고 했더니 담당자가 됐구요한마디 하던데, 그날은 하늘이 퍼랬지, 때리지도 않았는데 퍼랬지'라고 답했습니다.

 

가난하지만 우리가 글 쓰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의 정신의 지표와 질을 높여주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의 '영세한 노동의 밤'과 '축축한 땀내'는 우리에게 '꽃씨'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봉투 속에 담긴 꽃씨가 우리에게 희망을 주듯이 시인의 삶속에서도 커다란 등불이 되기를 소원해보는 겨울 끝, 초봄 무렵입니다.

 

이완근(시인, 월간 뷰티라이프 편집국장)

 <미용회보M> 201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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