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꼴림에 대하여-함순례-

불량아들 2016. 6. 7. 12:43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36)

 

꼴림에 대하여

-함순례(1966~ )

 

개구리 울음소리 와글와글 여름밤을 끌고 간다

한 번 하고 싶어 저리 야단들인데

푸른 기운 쌓이는 들녘에 점점 붉은 등불 켜진다

 

내가 꼴린다는 말을 할 때마다

사내들은 가시내가 참, 혀를 찬다

꼴림은 떨림이고 싹이 튼다는 것

무언가 하고 싶어진다는 것

빈 하늘에 기러기를 날려보내는 일

마음 속 냉기 당당하게 풀면서

한 발 내딛는 것

 

개구리 울음소리 저릿저릿 메마른 마음 훑고 간다

물오른 아카시아 꽃잎들

붉은 달빛 안으로 가득 들어앉는다

 

꼴린다, 화르르 풍요로워지는 초여름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36번째 시는 함순례 시인의 꼴림에 대하여입니다.

 

어릴 적 시골 동네 골목길에서 삐질삐질 땀 흘리며 놀다가 석양이 지기 시작하면 흙 잔뜩 묻은 양말 툭툭 털어 툇마루 한쪽에 벗어던져놓고는 마당 앞에 놓인 밥상에 빙 둘러앉아 저녁밥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저녁을 마친 후, 어린 우리들은 할머니 옛날 얘기와 개구리 울음소리에 시나브로 잠이 들었습니다만 삼촌들은 끼리끼리 모여 아랫마을 처녀들과 물레방앗간에서 몰래 만나기 일쑤였습니다.

 

필자는 지금도 가끔 개구리 울음소리를 환청으로 듣습니다. 환청으로 듣는 개구리 울음소리는 시골에서 듣던 소리와 똑같습니다. 마치 시골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도 합니다. 특히 막걸리라도 많이 마시고 들어온 날 새벽에 듣는 그 소리는 꿈을 꾸듯 황홀합니다.

 

개구리가 여름밤 와글와글 우는 것은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한 번 하고 싶어서 저리 야단들이랍니다. 무지 야합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야한 것만큼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도 없습니다. 야한 것은 꼴림이고 꼴림은 떨림이고 싹이 튼다는 것/ 무언가 하고 싶어진다는 것/ 마음속 냉기 당당하게 풀어내어 결국 세상을 향해 한 발 내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성한 꼴림이 있기에 인간과 자연은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고 생산적인 활동을 계속하게 됩니다. 한 번 하고 싶어 야단인 개구리 울음소리 덕분에 물 오른 아카시아 꽃잎들달빛 안으로 가득 들어 앉아서 벌이 애타게 찾는 신성한 꿀을 만들어냅니다. 꼴림이 생산과 소비의 주체가 됩니다. 꼴림이 우주의 에너지원()이 됩니다.

 

꼴림이 이처럼 경이롭기에 여름밤은 화르르, 화르르 풍요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 오늘부터는 누구에겐가, 어떤 것인가에 꼴리며, 리며 살 일입니다.

 

이완근(시인, 월간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미용회보M> 2016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