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데칼코마니-아버지 -김원식-

불량아들 2016. 7. 6. 13:06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37)

 

데칼코마니

-아버지

-김원식(1962~ )

 

아버지는 칭찬도 화를 내며 하셨다

전교 우등상을 받던 날

궐련을 물며 아버지는 혀를 차셨다

노름판에서 논밭뙈기 싹 날려 불고

저것을 어찌 갤 켜. 먼 조화여 시방.”

눈보라에 빈 장독 홀로 울던 새벽,

몰래 생솔가지로 군불을 때주시며

한숨이 구만 구천 두이던 아버지는

자식 사랑도 당신 타박으로 하셨다

사립문 옆 헛청에서 나뭇짐을 부리며

시침 떼듯 진달래를 건네주던 당신께

나의 숨김은 하나만은 아닌 듯하다

구들장 틈으로 새는 연기를 참으며

자는 척, 당신의 눈물을 본 것이요

꼭 탁한 아비가 된 나를 본 것이다

아직 서슬 퍼런 지청구는 여전한데

여태 당신 속정까지는 닮지 못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37번째 시는 김원식 시인의 데칼코마니-아버지입니다.

 

고향은 그 사람의 인성과 성격 형성에 커다란 인자로 자리 잡습니다. 김원식 시인은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전주시를 둘러싸고 있는 211면으로 이루어진 완주군은 풍광이 아름답고 시골의 정감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고향 같은 곳입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장독’, ‘생솔가지’, ‘군불’, 사립문’, ‘헛청’, ‘나뭇짐’, ‘구들장’, ‘지청구등의 단어는 우리 같은 시골뜨기들에게는 듣기만 해도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시는 머리가 아닌 가슴속에 품고 싶어집니다.

 

자식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지만 옛 분들의 사랑은 군불에 데운 구들장처럼 은은하고 온화합니다. 아들이 전교 우등상을 받더라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것은 지독한 가난 때문입니다. 장한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생솔가지로 군불을 때주어 아들 방을 따뜻하게 해준다거나 시침 떼듯 진달래를 건네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무뚝뚝한 아버지가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사랑법입니다.

 

이런 아버지의 깊은 속정을 알고 있는 아들은 눈물을 흘립니다. 커서 이런 아버지가 되고자 결심합니다. 공부도 열심히 합니다. 대학도 들어가고 아버지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깨닫습니다. 무궁무진한 사랑을 가득 담은 아버지의 마음까지 닮으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을......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시인이 시인의 아버지와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는 것을. ‘꼭 탁한 아비가 된 나를보는 것처럼 아직도 아들은 아버지를 향한 속내를 다 드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 사랑한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는 시인은 아버지와 동일인입니다. 그만큼 심성이 맑고 사랑은 깊습니다.

 

아버지는 자식, 특히 아들들에게는 거울에 다름 아닙니다. 시인은 여태 당신 속정까지는 닮지 못했다고 고백하지만 이런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것 자체가 축복이요, 삶의 희망임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완근(시인, 월간 뷰티라이프 편집인 대표 겸 편집국장)

 <미용회보>2016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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