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빨간 내복-공광규-

불량아들 2016. 10. 6. 16:33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39)

 

 

빨간 내복

-공광규(1960~ )

 

강화오일장 꽃팬티 옆에

빨간 내복 팔고 있소

 

빨간 내복 사고 싶어도

엄마가 없어서 못 산다오

 

엄마를 닮은

늙어가는 누나도 없다오

 

나는 혼자여서

혼자 풀빵을 먹고 있다오

 

빨간 내복 입던

엄마 생각하다 목이 멘다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39번째 시는 공광규 시인의빨간 내복입니다.

 

옛날 오일장에 가면 거개의 우리 어머니들은 몸빼바지와 함께 빨간 내복을 샀습니다. 몸빼바지야 입기 편하고 일하기 좋아서 샀다고 하지만 굳이 빨간 내복을 선호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빨간 내복은 세련됨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으니까요. 객지에 나가 있는 삼촌이나 고모 등이 추석이나 설날 등 명절에 사가지고 오는 옷도 여지없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빨간 내복이었습니다. 마치 빨간 내복 하나면 혹한의 겨울도 너끈히 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빨간 내복의 선물은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다시 시로 되돌아와 봅니다. 이 정도면 절창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막걸리 한 주전자 마시고 석양 끝에 앉아서 목이 터져라 창()을 부르는 고수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강화오일장 꽃팬티 옆’ ‘빨간 내복을 보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생전에 그렇게 사주고 싶었던 내복이었으며 이제 형편이 되어 호강시켜 드리고 싶은데 그런 어머니는 이제 내 곁에 없습니다. 하물며 엄마를 닮은/ 늙어가는 누나도 없는 현실을 상기할 때 눈물만이 앞을 가립니다. 그렇다고 징징대지는 않습니다. 그 슬픔마저도 가슴 안에서 삭여야겠지요.

 

여기 한 사내가 시골 오일장 앞에서 혼자 풀빵을 먹고 있습니다. 빨간 내복을 사주고 싶어도 엄마가 없어서 못 사주고, 그런 엄마라도 닮은 늙어가는 누나마저 없는 혼자이니 혼자 풀빵을 먹고 있을 수밖에요. 그러니 목만 멥니다.

 

이 시를 다시 조곤조곤 읽어봅니다. 우리의 생이 필름처럼 지나갑니다. 한 사내의 그립고 그리운 애절한 사연이 내 마음속에 착 달라붙습니다.

 

고수의 절창은 영원히 마음속에 남겨지는 법.

 

이완근(시인, 월간 뷰티라이프 편집인 대표 겸 편집국장)

  미용회보 2016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