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병아리-곽해룡-

불량아들 2016. 12. 29. 11:14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43)

 

 

병아리

-곽해룡(1965~ )

 

 

육십 촉 전구만 한

노랑 병아리가

강아지 집으로 들어갔다

어둑하던

강아지 집이

환해졌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43번째 시는 곽해룡 시인의 병아리입니다.

 

백 마디의 말이 무슨 필요가 있으리오. 살다보면 그림 한 점이 우리 마음을 평생 달뜨게 할 때가 있고, 이런 멋진 시 한 편은 우리 마음속에 똬리 틀고 자리 잡아 일생 동안 지워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의 시골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로 기억됩니다. 마침 부모님과 누나 그리고 필자 이렇게 넷이서 사랑방에 도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그 경이로운 빛의 세계라니요! 그때의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30촉 전구가 내는 밝음은 또 다른 세계였습니다. 벽지에 풀칠을 하던 우리 가족들은 놀라서 서로의 얼굴만 바라다볼 뿐이었습니다.

 

이 시를 읽으니 그때의 경이가 새롭게 떠오릅니다. ‘육십 촉 전구만 한/ 노랑 병아리’, 상상이 가시나요? 노랑 병아리가 아장아장 걷는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여기서 노란 병아리여서는 절대 아니 됩니다. 노랑 병아리여야 합니다.

 

노랑 병아리가 이제 걸음을 떼기 시작하는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걸음걸이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이가 가득 찬 눈으로 아장아장 걷고 있습니다. 육십 촉 전구만 한 노랑 병아리가 가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다름 아닌 어둑하던/ 강아지 집이었습니다. 어두운 강아지 집에는 검정색이거나 하양색, 아니면 줄무늬를 한 바둑이가 누군가를 기다리며 외롭게 앉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노랑 병아리의 방문에 -전기가 처음 들어온 날 필자 가족들이 느꼈던 경이를- 어두운 강아지 집 속의 검정색이거나 하양색, 아니면 줄무늬를 한 바둑이는 필시 느꼈을 것입니다.

 

강아지 집이/ 환해진 것은 노랑 병아리가 내는 기적입니다. 외로운 사람은 고독한 사물을 안다지요? 선행은 이렇게 소리 없이 진행돼야 제격입니다.

 

시절이 하 수상한 오늘날, 노랑 병아리가 어서어서 우리 곁에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생활도, 마음도 강아지 집처럼 환해지겠지요.

 

이완근(시인, 월간 뷰티라이프 편집인 대표 겸 편집국장)

  <미용회보M> 201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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