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46)
겨울나무
-곽기영(1962~ )
싹 틔우고 꽃 피웠던
덧없던 세월
겨울 삭풍에 내 모든 것 버리고
품속에 그리움의 나이테
한 줄 갈무리한 채
그저 홀로 흔들리며
청춘(靑春)의 꿈을 잇기 위해
잠을 청한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46번째 시는 곽기영 시인의 ‘겨울나무’입니다.
시인은 참으로 생각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한 박자 늦은 계절에 겨울나무를 생각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시인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겨울나무가 삭풍에 흔들리며 오돌 오돌 떨고 있습니다. 겨울나무가 이렇게 헐벗고 있지만 세 계절에 앞서서는 ‘싹 틔우고 꽃 피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름답게 밤을 불태우기도 했고, 세상 모든 게 그의 것인 듯도 했습니다. 이는 하마 젊은 날의 인간에 비견될 수도 있습니다. 싹 틔우고 꽃 피웠던 시절은 청년에 다름 아니었겠지요. 그러나 청춘은 세월 앞에 무기력해집니다. 꽃 피우고 열매 맺었던 시절은 ‘삭풍에 내 모든 것 버’린 겨울나무처럼, 인생도 어느 덧 황혼기에 접어듭니다. 그렇다고 쓸쓸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겨울나무가 ‘품속에 그리움의 나이테’ 하나씩 켜켜이 만들어가듯이, ‘청춘의 꿈을 잇기 위해/ 잠을 청’하듯이, 오늘의 우리는 내일을 창조해가는 중이니까요.
시인은 집 밖을 나서다가 삭풍에 떨고 있는 겨울나무를 봅니다. 그 모습을 보며 인생을 반추합니다. 이 나무가 지금은 헐벗고 추위에 떨고 있지만 한때는 잎을 만들고, 꽃을 피우고 결국엔 열매까지 맺었을 것입니다. ‘덧없던 세월’은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덧없는 세월만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겨울 삭풍에 흔들리고 있는 그 시간에도 겨울나무는 나이테를 만들면서 무심한 듯 잠을 청하고 있었던 까닭입니다. 잠은 죽음이 아닙니다. ‘청춘의 꿈을 잇기 위’한 절치부심의 시간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청춘의 때를 지나 노년에 접어들었을 때 삶의 맛과 품격도 깊어집니다. 겨울나무를 보며 시인도 인생의 맛과 깊이를 문득 깨닫나봅니다. 그런 시인의 삶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것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니겠지요.
【이완근(시인, 월간 뷰티라이프 편집인 대표 겸 편집국장)】
<미용회보M> 2017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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