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상봉-김정수-

불량아들 2017. 4. 26. 13:34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47)

 

상봉

-김정수(1963~ )

 

 

당뇨 검사를 하려고 새끼손가락의 지문을 찔렀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붉은

눈과 마주쳤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47번째 시는 김정수 시인의 상봉입니다.

 

아버지의 존재는 존재 그 이상의 가치가 있습니다. 특히 사내아이에게는 더욱 그렇지요. 아버지를 생각해봅니다. 막걸리를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그래서 마을 술친구들과 어울려 매일이다시피 술판을 벌였습니다. 농사를 지으시다가도 새참으로 나온 막걸리를 객들이 지나가면 손 까불어 같이 마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좋아하셨으며 우스갯소리를 잘하셨습니다. 남의 딱한 사정은 잘도 아셨습니다. 우리 논, 밭을 저당 잡혀 이웃의 빚을 해결해주시기도 했습니다. 남한테 싫은 소리하시는 걸 죽도록 싫어하셨습니다. 그러니 평생을 정갈하게 살아오신 어머니와는 의견 충돌이 많았습니다. 당시 어린 필자가 생각해도 아버지가 잘 못하셨는데 그런 아버지가 싫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으로 묘한 매력을 많이 가지고 계신 아버지셨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여읜 지 어느덧 십 수 년.

 

김정수 시인의 상봉은 기억속의 아버지를 반추해냅니다. 당뇨는 유전적 요소가 많다고 합니다. ‘새끼손가락의 지문을 찔렀을 때 시인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붉은/ 눈과 마주칩니다. 시인이 느꼈을 감정을 필자도 오롯이 느낍니다. 지금 이 시간은 비록 찰나지만 인생의 전부가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버지에게서 느꼈던 추억과 회한, 심지어 다양한 경험까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집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자식은 한 핏줄로 이어졌다는 숙명을 받아들입니다. 그 숙명은 좋은 의미든 그렇지 않든 인연이라는 단단한 줄로 엮어져 있습니다. 피 한 방울에서 아버지의 존재를 격하게 느낍니다.

 

그나저나 새끼손가락의 피 한 방울을 보며 아버지의 / 붉은/ 눈과 마주쳤다고 표현할 수 있는 시인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즐거운 사람들입니다.

 

 

 

이완근(시인, 월간 뷰티라이프 편집인 대표 겸 편집국장)

  <미용회보M> 2017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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