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매미-조현석-

불량아들 2017. 7. 3. 13:57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49)

 

매미

-조현석(1963~ )

 

 

구름 없는 파란 하늘이 낮아 보였을까

푸른 숲의 손짓이 다정했을까

새하얀 폭염의 햇살을 불렀을까

서러운 울음 가득한 허공으로

몸도 마음도 모조리 비워버린 껍데기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49번째 시는 조현석 시인의 매미입니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매미는 땅 속에서 5~7년을 지내고 나서 지상에 올라와 2주간을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고 합니다. 2주간의 생을 위해서 7년이란 땅속 생활을 해야 하는 매미의 삶은 그래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남다릅니다.

 

매미는 땅속에서 구름 없는 파란 하늘푸른 숲의 손짓’, ‘새하얀 폭염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동경했을까요. 7년의 인고 끝에 맞이한 세상은 온통 새하얀, 투명함뿐입니다. 그러나 기다림의 미학, 벅찬 감동을 느끼기도 전에 매미는 서러운 울음을 허공 속으로 뿌려대야 합니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그리해온 것처럼 종족을 번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나온 것은 구름 없는 파란 하늘이 그리웠고 푸른 숲의 손짓이 다정해서였고 새하얀 폭염의 햇살을 느껴보고 싶어서였건만 허공으로 서러운 울음만 가득 채워야 하는 매미의 운명.

 

그렇다고 매미의 삶이 헛되진 않습니다. 매미는 몸도 마음도 모조리그야말로 모든 걸 하얗게 비워버렸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비움은 공()이 아니라 채움(滿)입니다. 다음 세대로 잇게 해주는 지엄한 지상의 과제입니다. 그리고 그 과업을 매미는 훌륭하게 수행합니다.

 

텅 빈 충만! 오늘도 매미가 웁니다. 몸도 마음도 모조리 비워버리고 허공 속으로 염원을 날리고 있는 매미의 울음소리이기에 소음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오늘만큼은 스님의 목탁소리보다도 더 위엄 있게 들립니다.

 

껍데기가 더 무겁게 느껴지는 한여름 오후입니다.

 

이완근(시인, 월간 뷰티라이프 편집인 대표 겸 편집국장)

    

<미용회보M> 2017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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