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개 같은 사랑-최광임-

불량아들 2017. 8. 30. 10:31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50)

 

개 같은 사랑

-최광임(1967~ )

 

 

대로를 가로지르던 수캐 덤프트럭 밑에 섰다

휘청 앞발 꺾였다 일어서서 맞은편 내 자동차 쪽

앞서 건넌 암캐를 향하고 있다, 급정거하며

경적 울리다 유리창 밖에 개의 눈과 마주쳤다

저런 눈빛의 사내라면 나를 통째로 걸어도 좋으리라

거리의 차들 줄줄 밀리며 빵빵거리는데

죄라고는 사랑한 일 밖에 없는 눈빛, 필사적이다

폭우의 들녘 묵묵히 견뎌 선 야생화거나

급물살 위 둥둥 떠내려가는 꽃잎 같은, 지금 네게

무서운 건 사랑인지 세상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간의 생을 더듬어 보아도 보지 못한 것 같은 눈

단 한 번 어렴풋이 닮은 눈빛 하나 있었는데

그만 나쁜 여자가 되기로 했다

 

그 밤, 젖무덤 출렁출렁한 암캐의 젖을 물리며

개 같은 사내의 여자를 오래도록 꿈꾸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50번째 시는 최광임 시인의 개 같은 사랑입니다.

 

필자는 일요일 아침마다 방영하는 SBS TV동물농장이라는 프로를 즐겨봅니다. 이 프로에는 많은 감동과 교훈을 주는 여러 동물들이 등장하지만 그중에서도 으뜸은 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미를 잃고 식음을 전폐하며 사는 어린 강아지라든지, 주인과 함께 생활하다 화재로 주인을 잃은 개가 그 집 주위를 떠나지 못하고 배회하는 모습 등은 우리 마음을 뭉클하게 합니다. 단짝을 교통 사고로 보내고 홀로 된 암캐가 짝을 잊지 못하고 사고 지점에 날마다 와서 서성이는 광경을 보며 눈시울을 뜨겁게 적시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입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개나 소만큼 인간에게 친근한 동물도 드뭅니다. 특히 현대인에게 개는 가족의 일원이자 반려동물로 우리 의식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못된 사람을 지적할 때 우리는 개 같은 사람’, 혹은 개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개를 깎아내립니다.

 

대로를 가로지르던 수캐가 덤프트럭 밑에선 것은 앞서 건넌 암캐때문입니다. 필사적으로 사랑한 일 밖에 없는 수캐가 그래서 시인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이것저것 따지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암캐를 향해 질주하는 수캐를 보며 저런 눈빛의 사내라면 나를 통째로 걸어도 좋으리라고 작심합니다.

 

사랑은 이런 것이군요. 폭우를 견뎌 낸 야생화, 급물살 위를 둥둥 떠내려가는 꽃잎 같은... .

그러나 이런 사랑을 현실에선 보기 힘든 게 사실. 이것저것 가리다가 기울지 않는 사랑만 하시 십상. 그러니 사랑 하나만 믿고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수캐를 보며 젖무덤 출렁출렁한 암캐의 젖을 물리며/ 개 같은 사내의 여자를 오래도록 꿈꾸는 것은 당연한 일.

 

오늘은 개 같은 사랑 진짜로 한번 해보고 싶은 무더운 여름 오후.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 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17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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