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가자, 장미여관으로-마광수-

불량아들 2017. 9. 26. 10:50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51)

가자, 장미여관으로!

마광수(1951~2017)

 

만나서 이빨만 까기는 싫어

점잖은 척 뜸들이며 썰풀기는 더욱 싫어

러브 이즈 터치

러브 이즈 휠링

가자, 장미여관으로!

 

화사한 레스토랑에서 어색하게 쌍칼 놀리긴 싫어

없는 돈에 콜택시, 의젓한 드라이브는 싫어

사랑은 순간으로 와서 영원이 되는 것

난 말없는 보디 랭귀지가 제일 좋아

가자, 장미여관으로!

 

철학, 인생, 종교가 어쩌구저쩌구

세계의 운명이 자기 운명인 양 걱정하는 체 주절주절

커피는 초이스 심포니는 카라얀

나는 뽀뽀하고 싶어 죽겠는데, 오 그녀는 토론만 하자고 하네

가자, 장미여관으로!

 

블루스도 싫어 디스코는 더욱 싫어

난 네 발냄새를 맡고 싶어, 그 고린내에 취하고 싶어

네 치렁치렁 긴 머리를 빗질해 주고도 싶어

네 뾰족한 손톱마다 색색 가지 매니큐어를 발라 주고도 싶어

가자, 장미여관으로!

 

러브 이즈 터칭

러브 이즈 휠링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51번째 시는 지난달에 작고하신 마광수 교수의 ‘가, 장미여관으로!’입니다.

 

1985년에 발표된 이 시는 우리 사회에 적잖은 파열음을 내며 충격을 주었습니다. 필자가 굳이 발표 연대를 적시한 것은 그 시대 상황을 알지 못하고는 이 시가 주는 충격과 비판, 거기에 더해 우리 사회가 한 정직한 지식인에 대해 허울뿐인 날카로운 잣대를 어떻게 들이대며 대응했는지를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각설하고, 마광수 교수는 우리 시대가 만들어낸 피해자에 다름 아닙니다. 자살이라고 결론 내려진 그의 죽음에 우리는 방조자였거나 가담자였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에게 우리 사회는 윤리라는 굴레를 덧씌워 그를 가두려했고 손가락질했으며 고립의 섬으로 내몰았습니다. 그의 외로움의 깊이를 우리는 진정 몰랐었습니다.

 

사랑은 순수할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만나서 이빨만 까점잖은 척 뜸들이며 썰푸는 인간들은 얼마나 위선적입니까. ‘철학, 인생, 종교가 어쩌구저쩌구/ 세계의 운명이 자기 운명인 양 걱정하는 체 주절주절하는 인간은 또 어떻습니까. 그들의 목적은 단지 하나, ‘여관.

 

시인의 목적도 여관이지만 시인은 단지 네 발냄새를 맡고 싶치렁치렁 긴 머리를 빗질해 주고도 싶뾰족한 손톱마다 색색 가지 매니큐어를 발라 주고도 싶, 순수의 마음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장미여관은 육욕에만 불타지 않습니다.

 

사랑은 순간으로 와서 영원이 되는 것인데 이런 사랑 앞에 주저리주저리 무슨 이유와 설명이 필요하리요.

 

우리 시대, 날것처럼 사랑을 갈구했던 대시인은 가고 허접한 우리들만 남아 세월을, 가을을 핑계 삼아 사랑을 구걸하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 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17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