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라이프 칼럼

살아 있음은 축복이다

불량아들 2017. 8. 28. 14:29

Editor’s Letter

살아 있음은 축복이다

 

근래 가까운 사람의 장례 절차를 지켜보면서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그런 경험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고는 하지만 이번 일은 슬픔과 비애 그 자체였습니다.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 한 인간의 존재는 미약하기 그지없습니다. 광활한 우주에서 지구 자체도 하나의 먼지에 불과함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한 인간은 이렇게 나약할지 몰라도 한 생명은 그 자체로 한 세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 , 우리는 각자의 세계를 이루며 존재합니다. 그 존재들은 서로 연관 관계를 맺으며 또 다른 세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세계가 유기적인 이유입니다. 독립적이되 혼자일 수 없는 세계가 인간 세계입니다.

 

한 인간의 부재는 다른 세계의 붕괴에 다름 아닙니다. 그 여파는 인간이 가진 망각이라는 인식 체계가 발동해야만 치유될 수 있습니다.

 

오늘 또다시 생과 사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확실한 건 살아 있음은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세계는 오직 나 하나만의 세계가 아님은 자명합니다. 나와 관계된 많은 세계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나만의 세계가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니 나의 세계가 존엄하면 존엄할수록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세계도 존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의 세계가 붕괴한다면 그 세계를 이루고 있는 유기적 결합들은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가족, 친척, 이웃들을 아끼고 소중하게 대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살아 있음은 축복입니다. 살아 있음은 내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고, 그 존재는 또 다른 세계를 잉태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손에 언제나 할 일이 있기를// 당신의 지갑에 언제나/ 한두 개의 동전이 남아 있기를// 당신의 발 앞에 언제나 길이 나타나기를// 바람은 언제나 당신의 등 뒤에서 불고/ 당신의 얼굴에는 해가 비치기를// 이따금 당신의 길에 비가 내리더라도/ 곧 무지개가 뜨기를// 불행에서는 가난하고/ 축복에서는 부자가 되기를// 적을 만드는 데는 느리고/ 친구를 만드는 데는 빠르기를

인디언 켈트족의 기도문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 살아 있음이 축복임을 가슴속 깊이 느끼고 나와 내 이웃들을 더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뜨거운 늦여름날에 가져봅니다.

 

이완근(편집국장alps0202@hanmail.net

 

바늘을 찾았다

 

아내가 바느질을 하다가

바늘 하나를 잃었다, 며칠 전이었다

 

요즘 부쩍 눈이 침침해진 아내는

눈과 떨리는 손을 탓하며

안절부절 주위를 이 잡듯 뒤졌다

심오한 합동 수색에도 바늘의 행방은 오리무중

아내는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며 혀를 찼다

들며날며 잘 생긴 엉덩이에라도 찔리면 어떡할 거냐며 근심 가득했다

바느질 자리를 찾고 찾다 포기했다

포기만큼 불안은 더했다

 

오늘 아침 마룻바닥에서 그 바늘을 찾았다

우연찮게 바느질 자리에 떡하니 누워 있는

바늘을 본 것이다

 

그래, 모든 것은 그 자리에 있는 법

안달복달할 일이 아니지

오늘 아침 바늘의 귀환은

아내에게서 시름과 세상 이치,

두 가지를 동시에 앗아가고 안겨주었다

 

<뷰티라이프> 2017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