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라이프 칼럼

미용인 시인들

불량아들 2022. 4. 6. 15:45

Editor’s Letter

 

미용인 시인들

 

코로나 시국에서도 꽃은 피고, 강 물결은 하얗게 빛나며 물고기들을 살찌우고 있습니다. 하늘의 뜻을 거역하지 않는 자연의 섭리 앞에 인간은 초라해집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그리고 그렇게 여름과 가을, 또다시 겨울이 옴을 알면서도 눈앞의 실리에 사로잡혀 일희일비함은 인간이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겠지요.

 

텔레비전 뉴스 속에 나오는 승자의 의기양양함이 좋아 보이지 않는 것은, 승자 뒤에 있어야할 너그러움이 없어서일 거라는 객쩍은 생각도 해보는 봄날입니다.

 

우리 미용계에는 시를 쓰는 미용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삭막한 세상에서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인뿐만 아니라 시낭송가, 화가, 서예가 등등 예술을 하는 미용인이 많다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며 반가운 일입니다.

 

시인으로 등단한 미용인들을 어림잡아 꼽아보니 열대여섯 명쯤 됩니다. 그 중에서도 시집까지 낸 미용인을 살펴보니, 청주에서 예일미용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계신 홍도화 박사는 <>, <이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 등 개인시집 두 권을 냈고, 여수에서 마르꾸파리전남대점을 운영하는 송정현 원장은 <꽃잎을 번역하다>란 시집을 낸 바 있습니다. 여수 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동인지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평택에서 미용실을 하는 최대희(본명 최정희) 원장은 <치즈사랑>, <선물>, <그리움은 오솔길에 있다> 등의 시집을 상재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안성시에서 예인미용실을 꾸리고 있는 김정조 원장은 <따스한 혹한>이라는 시집을 발간해서 호평

을 받았습니다.

 

한국미용장협회 서울시지회장을 역임했던 정순옥 미용장은 <음표없는 멜로디>, <기다림의 언덕> 등 두 권의 시집을 출간했고, 동두천시에서 샤론의꽃미용실이끌고 있는 서희준 원장은 <은빛비자>, <바람을 몰고 오는 사람>, <샤론의 꽃> 등 시집 세 권을 냈습니다.

 

또한 전북 익산에서 최윤경미용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최윤경 원장은 <재난의 길목에서>란 시집을 비롯, 11권의 시집을 간행했습니다. 한국분장 대표로 있으면서 분장 인생 40년 경력을 자랑하는 강대영 대표가 지난 2월에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이란 시집을 내면서 미용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시집을 발간하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시를 쓰고 있는 미용인들이 전국에 많이 있습니다. 모두 소중한 미용인 자산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시인들뿐만 아니라 시낭송가로 활동하는 미용인들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미용계 행사 시 미용인 시를 낭송하는 시간을 프로그램 중에 넣는다면 행사의 품격이 한층 높아질 거라는 생각을 꽃이 피는 봄날에 해봅니다.

 

이 시간에도 자연의 순환을 온몸으로 느끼며 인생의 희로해락을 시로 승화하고자 애쓰고 계실 미용인 시인을 비롯, 가슴이 모두 시인인 미용인들께 화사한 봄날을 선물로 드립니다.        이완근(편집국장alps0202@hanmail.net)

 

 

M의 외출

 

M은 새벽에 일어났다

아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거실로 나오자 창밖으로 희미한 불빛이 스며들었다

검은 외투를 걸치고 아파트 문을 나섰다

고고한 달빛이 내리쬐는 돌담 위에서 웅크리고 있던,

고양이 한 마리가 빤히 노려보았다

길 위를 새벽바람이 뒹굴며 지나갔다

몇 번의 심호흡이 M의 심장을 자극했다

낚싯줄과 물고기의 팽팽한 대치처럼

그는 여명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모든 게 부질없는 짓,

속으로 되 뇌이며

뒹구는 바람을 앞서 걸었다

마침내 골목 끝에 다다랐으나

골목은 또 다른 골목으로 이어졌다

좁은 골목 어둑한 허공 속에서 침을 한번 삼키고

깃을 세운 야생마처럼

가던 길을 되돌아서 달렸다

고양이 두어 마리가 혼비백산 담 위를 넘었다

동이 트려면 아직 멀었다고 M은 생각했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빛을 따라 구름이 모양을 바꾸고 있었고

탱자나무가 가지를 부르르 부르르 떨고 있었다

부역을 마친 노동자처럼 그림자를 길게 거느리며

M은 집으로 돌아왔고

아무도 M의 외출을 알지 못했다

 

<뷰티라이프> 2022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