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인보

52년 미용 인생을 예쁘게 살다-장옥식 전북도 지회장-

불량아들 2022. 7. 4. 15:43

미용인보(美容人譜)39

 

52년 미용 인생을 예쁘게 살다

장옥식 전북도 지회장

고은 시인은 주위 사람들 만 명을 대상으로 시를 짓고 <만인보>라는 시집을 출간했다. 이는 시인이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단적인 예이다. 기자는 이를 차용하여 주변 미용인에 대한 시와 스토리를 매달 한 편씩 쓸 예정이다. 그 중에는 성공한 미용인도 있을 것이고 동네에서 나 홀로 미용실을 운영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기자에겐 모두 소중하고 고귀한 미용인 자산이다. 그 분들과 함께 한 생활이 기자에겐 기쁨이고 행복이다. 우리는 미용으로 엮어진 떼려야 뗄 수 없는 미용가족이니까. 이완근(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alps0202@hanmail.net

 

 

미용은 내 삶의 전부

-장옥식 前 회장

 

부잣집 딸로 태어나

남부러울 거 없이 자랐네

철없던 시절

화가를 동경했던 시절

그러나 후회하지는 않네

사랑만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

사랑으로 역경을 극복하며

복된 미용사의 길을 걸었네

미용은 나의 힘

숙명으로 받아들인 길

50여 년 미용의 길

이제 반추해보니

세 아이들 반듯하게 자라고

지부장, 지회장, 중앙회 부회장

내 삶의 전부였네

미용인이었기에

부끄럽지 않은 삶

오늘도 나는

영원한 미용인의 삶을

꿈꾸네

 

이무런 미용인, 장옥식 회장

전라도 말로 이무럽다는 말이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거리감 없이 아주 친한 사이를 말하는데, 전라도에서는 가까운 친구를 이무런 친구라고 말한다. 기자가 갑자기 이무럽다는 전라도 사투리를 친절(?)하게 해설하는 이유는 장옥식 대한미용사회 전라북도 회장(이하 회장이라 칭함)을 말할 때, 이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 미용계는 정과 의리 그리고 미용인이라는 동류의식으로 뭉쳐진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무러운 사람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장옥식 회장은 기자에게 특히 이무러운 미용인이다.

우리는 자주는 아니지만 때때로 전화를 주고받는 사이다. 장옥식 회장은 왕그니 국장 잘 있댜, 정읍에 언제 올겨?”라고 말하고 기자는 옥식이 성, 정읍 가서 송엽주 한잔해야는디...”라며 통화를 시작한다. 선거 때나 미용계에 이슈가 생길 때, 이런 통하는 자주 하게 된다. 그만큼 우리 사이는 이무런 관계다.

 

전라북도 도지회장 역임

장옥식 회장은 올해 5월까지 전라북도 도지회장을 역임했다. 도지회장을 명예롭게 그만두고 지난 524일 전라북도 지회 선거를 통하여 최인자 신임회장이 당선되자 진심으로 축하하며 도지회장 자리를 넘겨주었다. 지난 2014년 전북도 지회장을 보선을 통해 당선한 이래 지금까지 역임해 왔던 터. 시원섭섭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나 후배들을 위해 과감하게 양보했다.

 

장옥식 회장은 올해 미용 인생 52년을 맞았다. 장옥식 회장은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났다. 할아버지는 남원에서 참봉직을 하셨는데, 남원 30~40리 길이 전부 할아버지 땅일 정도였다. 그 부를 바탕으로 아버지는 동국대 대학원을 다니셨고 동경 유학까지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국회의원 출마 몇 번이 낙방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몰락해가는 집안의 분위기에 학교도 안 가고 방황을 하던 사춘기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와 손잡고 간 곳이 미용학교였다. 미용 인생의 시작점이었다.

 

아버지는 어릴 적 그림을 잘 그리는 그에게 미대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으나 가세가 기울자 아버지에게 대들고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네가 살면서 어떤 불행을 당해도 네 운명이고 숙명이려니 생각하고 너의 마음을 스스로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고 충고했고, 아버지 말씀은 지금까지 장옥식 회장의 가슴에 남아 교훈 역할을 하고 있다.

 

“72년에 면허를 취득하고, 광주 충장로의 이종 언니네 미용실에 한 달 정도 있다가 미용에 싫증을 느껴 그만두고 놀고 있던 저에게 집에선 시집가라고 볶아대고, 그 때 초등학교 선생하고 맞선도 보았어요.

내 나이 20세에 시집? 겁이 나서 정읍으로 도망 와 지내던 중 남편을 만나게 되었어요. 시댁이 너무 가난해서 결혼식에 엄마는 참석하지 않으실 정도로 저희 집안에서 반대가 심했어요.

반면 시댁은 한 끼 끓여먹을 쌀도 없으면서 전의 이씨 양반 가문이라고 미용사 하고는 결혼을 안 시킨다고 하니, 그리 축복받은 결혼은 아니었어요. 돌이켜보면 제가 참 막무가내였죠. 그렇게 가난이 무서운 줄 모르고, 없는 집 팔 남매 큰아들과 결혼을 한 덕에 지금까지 평생을 미용을 하게 되었어요.

763월에 근무하던 미용실을 그때 돈 140만원에 인수를 하였어요. 담보가 없으니 일수대출로... 지금 생각해 보면 스물셋 어린 나이에 통이 참 컸던 거 같아요. 어쩌면 사랑의 힘 때문이었을지도...

많이 외로운 상태에서 남편을 만났거든요. 그렇게 제가 돈을 벌고 남편이 매출을 관리하였어요. 그땐 참 착했던 거 같아요. 돈이 필요하면 남편에게 타서 썼으니까요.

다행히 7623세 나이에 오픈을 한 가게는 황금 밭이라 할 정도로 출근할 때마다 문 앞에서 고객들이 7~8명씩 기다리고 있었어요.

직원 5명과 하루 2~30명 펌을 해야 했고, 요정 아가씨들 업스타일 머리에 드라이에, 스텝들이 코피 흘리며 일할 정도이니, 편지 써놓고 그만 둬버린 직원들이 한둘이 아니었어요.

그때를 추억하니 감사함에 미소가 절로 나오네요.”

 

힘든 시기 슬기롭게 극복

오랜만에 듣는 장옥식 회장의 과거는 기자에게 반가움과 함께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온다. 장옥식 회장의 회상은 계속된다.

 

이후 광주 충장로에도 헤어숍을 오픈하고, 정읍에 100평 규모의 드레스, 메이크업, 네일, 헤어를 망라하는 토탈숍을 오픈해 수익도 많이 얻었지요. 그러나 행복은 순간이었고 불행이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IMF와 더불어 가정에 불화가 많은 것을 빼앗아갔어요.

그 힘든 시기에 자식 셋을 의대, 음대, 중국유학 보내고 자취를 시켜야 하는 현실적인 압박감,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버텼는지 감사할 따름이죠.

그렇게 열심히 벌어 놓은 돈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건지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감사하지요. 미용사가 아니었더라면 내 성격에 무엇을 해서 이 정도의 평화를 누리고 살 수 있었을까, 온갖 시련 속에서도 홀로 세 아이들을 사회에서 필요한 존재로 키워낼 수 있게 해준 미용에 감사하고 또 감사드리죠.”

 

힘든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장옥식 회장의 이야기에 기자는 존경심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세 자녀를 훌륭하게 키웠으니 현모(賢母)의 전형이 아니겠는가.

 

열정과 꿈, 이 말은 정읍 지부장 6, 도지회장 8, 중앙회 이사, 중앙회 부회장을 역임하면서도 항상 마음에 담아 두었던 말이지요. 이는 미용인 스스로가 떳떳해져야 가능한 일이지요.

시간 약속 잘 지키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정성 있고 솔직한 자세로 상대를 대하는, 어느 다른 직업에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기본을 지키며 스스로가 떳떳해지면 위상은 자연스레 높아질 거라 생각해요.”

 

미용인의 위상은 미용인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믿는 장옥식 회장은 분명 미용계의 표본이 되어도 모자람이 없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가족 봉사단 발족의 꿈

임기를 내려놓으니 마음껏 쉬고 싶어진다는 장옥식 회장은 요즘도 봉사활동에 열심이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족 봉사를 하고 싶다는 장옥식 회장. 그도 그럴 것이 부부의사, 부부공무원, 막내아들 음악인 그리고 본인은 미용인이니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가족 봉사단을 찾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터. 장옥식 회장의 바람이 오래 되지 않아 이루어질 것을 기자는 믿는다.

 

장옥식 회장과 기자는 꽤 오랜 기간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무런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허심탄회하게 맘을 터놓고 얘기하게 된 데에는 정읍의 송엽주도 그 역할을 크게 했을 것이란 생각이다. 사람의 인연이란 이처럼 묘하고도 질기다.

 

이제 많은 것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려는 초심으로 돌아간 장옥식 회장, 후배 미용인들에게 시기, 질투하지 말며 예쁘게 살 것을 권하는 장옥식 회장, 장옥식 회장의 삶은 예쁜 삶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란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장옥식 회장 약력

1976 정읍 현미용실 개업

1981 대한미용사회 정읍시지부 상무위원

1984 전북 미용기능기술경연대회 특상 수상

1990 CACF 기술위원, 프랑스 해어연수 세계대회 참가

1991 국가기술자격시험(미용) 감독 위촉

1993 원광대학교 행정대학원 수료

1994 호주, 일본 웰라 헤어연수(비달사슨 수료)

1995 96뉴욕 IBS대회 한국선수 선발 메이크업 장려상

1996 1회 전라북도 미용경연대회 심사위원

2004 대한미용사회 전북도지회 상임위원

2007 대한미용사회중앙회 홍보위원

2009 ()대한미용사회중앙회 기술강사

2010 ()정읍시 자원봉사활동 위원

2012 정읍시 물가대책위원회 위원

2014 국제미용페스티벌 심사위원, 전북지방경찰청 정읍지청 시민위원회 위원

2019 ()정읍시 지방제정계획 심사위원

2014 대한미용사회 전라북도지회 지회장 당선(보궐)

2014 대한미용사회중앙회 이사

2016 전라북도 기능경기대회 심사장

2017 대한미용사회중앙회 부회장

2019 광주시 명장선정 7개 종목 심사위원

2016~2022.5 대한미용사회 전라북도 지회장 역임

 

<뷰티라이프> 2022년 7월호, 창간 23주년 기념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