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라이프 칼럼

[스크랩] 미용실 풍경 셋

불량아들 2006. 5. 18. 16:47
미용실 풍경 셋

지방 중소도시의 대표격인 J시에서 15여년 째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K원장은
요즘 속앓이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용을 처음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이겨내고 견뎌온 것은
미용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IMF의 시기도 별 탈없이 무사히 넘겨왔지요.
그러나 요즘은 미용에 대한 회의 때문에 열대야보다도 더한 가슴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평화롭던 지방 도시의 미용인들을 잠 못 들게 하는 이는
다름아닌 같은 미용인이기에 더 기가 막힙니다.
수 개월 전에 오픈한 대형 프랜차이즈 미용실에서 가격을 내리더니
이젠 아주 상호를 세컨브랜드로 바꿔, 신규 오픈을 핑계삼아
미용 가격 초토화를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용은 기술이라고, 가격을 낮추는 건 자기 기술이 낮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자위해 보지만 중소도시에서의 대형 샵의 저가 홍보의 결과가
다른 샵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경험해온 K원장은 속이 편할 리 없습니다.
가격을 낮춰서 홍보해온 대형 샵들의 말로를 K원장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일 년을 제대로 버티지 못하고 슬그머니 사라지는 게 현실이었지요.
K원장이 염려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된 선택이
지방 토박이 미용인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입니다.
외지에서 자본만을 무기로 유입된 외지인들은 자본이 잠식당하면
툴툴 털고 떠나버리면 그만이지만, 적게는 몇 년을, 많게는 십 수 년씩을 버티고 살아온
토박이 미용인들의 비애는 말할 수 없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토박이 미용인들은 저가격으로 망신창이가 된 샵을 재건하기 위해서
몇 배의 노력을 더 경주해야 할지 모릅니다.
미용인이라는 자존심을 가지고 미용인의, 미용인에 의한 전문 샵을
경영하는 미용인들이 많아지기를 그래서 K원장은 간절히 바랍니다.

대구 근교의 조그만 읍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J원장의 샵에
말 못하는 할머니 한 분이 덥수룩한 머리로 찾아와 손짓, 발짓으로 머리를 해달라고 합니다.
며칠째 머리를 감지 않았는지 머리는 온갖 때로 찌들어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종종 있는 일.
J원장은 샴푸도 싫다는 할머니의 머리를 능숙한 빗질, 가위질로 예쁘게 다듬어 놓습니다.
거울을 보며 만족해 하던 할머니는 보따리를 풀고
보따리 속에서 고구마며 고추, 오이, 가지 등 속을 겸언쩍어 하며 내놓습니다.
동전 몇 개만 들어 있는 지갑을 꺼내 보여주며 머리를 조아립니다.
‘머리는 해야겠고 돈은 없고 해서 보자기 속의 곡식들을 머리삯으로 내놓았나 보다’고
J원장은 짐작합니다. 꺼내 논 알곡들을 그냥 가져가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다시 내놓는 할머니입니다.
“할머니 잘 먹을게요. 머리 또 하고 싶으시면 언제든지 오세요.” J
원장의 말에 할머니는 해맑게 웃습니다.
J원장도 신이나게 고구마며 가지, 오이들을 챙깁니다.
밖에서는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더 맑게, 곱게 울려 퍼집니다.

지난 6월 초 <한국여인의 髮자취>라는 단행본을 출간한 S원장은
주위의 기대와 박수 속에서 한 달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각종 신문, 잡지, 방송사의 인터뷰 요청을 어떻게 소화했는지도 모르게
두 달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정신을 좀 차리고 주위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보던 S원장은
미용계의 냉대에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10년 이상의 자료 수집과 6년 여에 걸친 집필을 통해 탄생한 이 단행본은
문화관광부의 추천 도서로 선정되었다는 이유가 아니더라도
한 미용인이 거둔 수확치고는 커다란 업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회의 큰 반향과는 달리 미용계에서는 몇몇 사람들을 빼고는
관심조차 없다는 투에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일 해봐야 누가 알아주기나 한다던’ 하는 미용계의 반응엔
섭섭함을 넘어 우울한 심정입니다.
더구나 정성을 들인 그 책을 폄하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 분위기는
S원장을 질리게 하기에 충분했지요.
다행히 복식, 의류쪽에서는 구입 문의와 격려의 전화가 많이 쇄도해
위안으로 살아간다는 S원장.
미용인이 미용인을 인정하는 미용계가 되어야
다른 분야에서도 미용인을 인정하지 않겠느냐는 그녀의 푸념이
기자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사람 사는 세상엔 사람이 최고지요. 고형렬 님의 <사람꽃>처럼 말이지요.



사람꽃

복숭아 꽃빛이 너무 아름답기로서니
사람꽃 아이만큼은 아름답지 않다네.
모란꽃이 그토록 아름답다고는 해도
사람꽃 처녀만큼은 아름답지가 못하네.
모두 할아버지들이 되어서 바라보게,
저 사람꽃만큼 아름다운 것이 있는가.
뭇 나비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여도
잉어가 아름답다고 암만 쳐다보아도
아무런들 사람만큼은 되지 않는다네.
사람만큼은 갖고 싶어지진 않는다네.

뷰티라이프 9월호
출처 : 뷰티라이프사랑모임
글쓴이 : 아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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