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동과 장미 -오규원- 개봉동과 장미 개봉동 입구의 길은 한 송이 장미 때문에 왼쪽으로 굽고, 굽은 길 어디에선가 빠져나와 장미는 길을 제 혼자 가게 하고 아직 흔들리는 가지 그대로 길 밖에 선다. 보라 가끔 몸을 흔들며 잎들이 제 마음대로 시간의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장미는 이곳 주민이 아니어서 시간 밖의 서울의 .. 내가 읽은 시 2006.04.03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 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 내가 읽은 시 2006.04.03
사랑 -안도현- 사랑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매미는 아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우는 것이다 내가 읽은 시 2006.04.03
선천성 그리움 -함민복- 선천성 그리움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내가 읽은 시 2006.04.03
하루살이, 하루살이 떼 -장철문- 하루살이, 하루살이 떼 지랄, 지랄, 저것들이 저렇게 환장하게, 육실허게 붐벼 쌓는 건 살아서 좋다는 것인가 살아서 못 살겠다는 것인가 염병, 염병, 저것들이 저렇게 미치게 몰켜 쌓는 건 어쩌란 것인가 어떻단 것인가 오살, 오살, 서산에는 막걸리 한동이 걸판진데 바짓가랭이 타고 오르는 풀냄새, .. 내가 읽은 시 2006.04.03
訃音 -박영우- 訃 音 조간신문에 흑백 사진 한 장과 함께 실린 부음란을 바라볼 때면 죽어라 하고 싶은 일만 하다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만 사랑하다가 죽어가고 싶다. 내가 읽은 시 2006.04.03
센 놈 -이진수- 센 놈 비얌이 우예 센지 아나 내사마 모르겠다 우예 센 긴데 참말 모르나 그놈이 센 거는 껍데기를 벗기 때문인기라 문디 자슥 껍데기 벗는 거하고 센 거하고 무신 상관이가 와 상관이 없다카나 니 들어 볼래 일단 껍데기를 벗으모 안 있나 비얌이 나오나 안 나오나 나온다카고 그래 씨부려 봐라 그라모.. 내가 읽은 시 2006.04.03
수선화에게 -정호승- 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 내가 읽은 시 2006.04.03
우리 나라 어머니 -서정주- 우리나라 어머니 아들이 여름에 염병에 걸려 외딴집에 내버려지면 우리나라 어머니는 그 아들 따라 같이 죽기로 작정하시고 밤낮으로 그 아들 옆에 가 지켜내면서 새벽마다 맑은 냉수 한 사발씩 떠놓고는 절하고 기도하며 말씀하시기를 “이년을 데려가시고 내 자식은 살려주시옵소서” 하셨나니....... 내가 읽은 시 2006.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