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시골길-이재무-

불량아들 2014. 11. 25. 12:06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8)

 

시골길

-이재무(1958~ )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걷는다

 

두근두근 길도 내가 그리웠나 보다

 

이제사 알겠다

 

내가 시골길에서 자주 넘어지는 이유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열여덟 번째 시는 이재무 시인의 시골길입니다.

시골길만큼 우리에게 많은 이야깃거리와 그리움을 전해주는 것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시골길에는 많은 추억이 녹아 있습니다.

특히 골목길은 장난꾸러기들의 아지트였지요.

한 겨울날 손이 부르트는 줄도 모르고 딱지치기며 구슬치기, 자치기 등에 시간 가는 줄 몰랐지요.

저녁 비둘기가 서산으로 집 찾아 날아가고 저녁연기 피어오르고 나서야

엄마, 누나의 부름을 받고 마지못해 집으로 들어갔지요.

 

보름달이 휘영청 떠있는 저녁이면 고샅길에 모여 술래잡기 놀이에 키가 쑥쑥 커져갔고,

마을에 제사라도 지내는 집이 있으면 단자붙이기를 해서

제사 음식을 맛있게도 나눠 먹으며 온 동네를 뛰어다녔고......

 

시골길 하면 부역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온 동네 어른들이 함께 모여 불퉁불퉁한 신작로를 평평하게 닦으며

길 옆 잡초 등을 제거하는 게 부역날의 일이었는데,

결국엔 과하게 마신 막걸리 때문에 동네 싸움으로 번지고 아이들은 울며불며

술 취한 아버지를 모시고 집에 들어가기에 바빴었습니다.

 

길에는 많은 서러움도 쌓여 있었습니다.

아랫집 영춘이네 아버지는 노름빚에 야간도주를 했었고,

더 아랫집 복자 누나는 외지 남자와 바람이 나 집에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골길하면 길옆에 함초롬히 핀 코스모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루에 서너 번 다니는 버스가 지나가면 먼지를 뒤집어쓰면서도

어느 새 맑게 단정하고 하늘하늘 피어있는 코스모스는 경이 그 자체였습니다.

 

지루하기만 했던 교장선생님의 훈시가 끝나고 학교가 파하면

개구쟁이들은 책보에 맨 도시락을 딸랑거리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어가기 시작했지요.

그러다 산모퉁이를 돌아 무밭에 있는 장딴지보다 큰 무를 하나, 둘씩 뽑아 들고

풀밭에 쓱쓱 문지른 후 벗겨 먹는 무맛, 아 지금 어찌 잊으리오!

 

눈에 다래끼가 생기는 날이면 신작로에 돌을 쌓아놓고 그

 사이에 눈썹 하나를 뽑아 돌 사이에 끼여 놓았지요.

그 돌을 찬 아이가 다래기를 가져간다고 조무래기들은 철썩 같이 믿었으니까요.

짐자전거에 술통을 싣고 가는 좀 모자란 영수네 삼촌 자전거를 밀어주는 척하며

술통에 빨대를 꽂아 막걸리를 쪽쪽 빨아먹고 얼굴 빨개진 체 헤헤거리던 그 유년의 시골길.

 

내가 시골길에서 자주 넘어지는 이유는 시골길이 울퉁불퉁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간직한 유년의 추억이 너무 아득해서란 걸 이제는 알겠네.

 

이완근(시인, 월간 뷰티라이프 편집국장)】

 <미용회보M> 2014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