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

사라진 입들-이영옥-

불량아들 2015. 2. 2. 14:15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20)

 

사라진 입들

-이영옥(1960~ )

 

잠실 방문을 열면 뽕잎 갉아먹는 소리가 소나기처럼 내렸다

어두컴컴한 방 안을 마구 두드리던 비,

애벌레들은 언니가 썰어 주는 뽕잎을 타고 너울너울 잠들었다가

빗소리를 몰고 일어났다

 

내 마음은 누가 갉아먹었는지 바람이 숭숭 들고 있었다

 

살아 있는 것들이 통통하게 살이 오를 동안

언니는 생의 급물살로 허우적거렸고

어두운 방을 나오면 환한 세상이 눈을 찔렀다

 

저녁이면 하루살이들이 봉창 거미줄에 목을 매러 왔다

섶 위의 누에처럼 얕은 잠에 빠진 언니의 숨소리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명주실 같았다

 

잠을 모두 잔 누에들은 실을 뽑아 제가 누울 관을 짰지만

고치를 팔아 등록금으로 쓴 나는 눈부신 비단이 되지 못했다

 

언니가 누에의 캄캄한 배 속을 들여다보며 풀어낸 희망과

그 작고 많은 입들은 어디로 갔을까

 

마른고치를 흔들어 귀에 대면

누군가 가만가만 흐느끼고 있다

생계의 등고선을 종종걸음 치던

그 아득한 적막에 기대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스무 번째 시는 이영옥 시인의 사라진 입들입니다.

 

잠실 방문을 열면 뽕잎 갉아먹는 소리가 소나기처럼 내렸다

아름다운 시청각적 이미지로 시작하는 이 시는

그러나 결코 아름답지 않은 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아름답지 못한 생이란 그 시절 누구나 겪어야 했던 물질적

빈곤한 삶을 말함이지 생 자체가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시절에 가난이란 누구에게나 천형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으니까요.

 

그 가난의 깊이는 저녁이면 하루살이들이 봉창 거미줄에 목을 매러 왔다거나

잠에 빠진 언니의 숨소리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명주실 같았다에서 정점을 이룹니다.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나오면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집안을 일으킬 것 같았는데

나는 눈부신 비단이 되지못하고 돈도 쌀과도 바꿀 수 없는 시나 쓰고 있지요.

 

그러나 그 언니가 풀어낸 희망이 있었기에 이처럼 아름다운 시를 만날 수 있고

맑은 심성의 시인이 탄생했음을 우리는 희망처럼 목도하고 있습니다.

래서 사라진 입들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있으리라는 확신을 하게 됩니다.

 

이완근(시인, 월간 뷰티라이프 편집국장)

 <미용회보M> 2015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