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라이프 칼럼

<나는 늙지 않는다>, <따스한 혹한>

불량아들 2015. 6. 26. 10:19

Editor's Letter

 

<나는 늙지 않는다>,  <따스한 혹한>

  

‘“얘, 성진인 장가 갔니?” 밥상을 차리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버지가 물었다.

성진은 나의 큰형님이다. “그럼요.” 아버지의 눈이 똥그래졌다. 믿기지 않는 듯 옆자리의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걔가 애가 셋이우. 그 중에 둘이 결혼해서 손자가 지금 넷인데 장가 갔냐고 묻다니.” 어머니는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고 눈이 더욱 커진 아버지는 이번엔 작은형인 승진이는 장가를 갔느냐고 물었다.

며칠째 아버지의 관심은 장가.

그제 아침 어머니와 티격태격했던 것도 아버지가 쉴 새 없이 장가를 보내달라고 졸라댔기 때문이다.

요즘 아버지에게 당신의 아내는 어머니가 되어 있다. 참다못한 어머니의 언성이 높아졌다.

70년을 나를 데리고 살아놓고 어느 년하고 눈이 맞았냐며 버럭 소리를 지른 것이다.

아버지는 뜨끔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실실 웃음이 나왔다.’

<김삼진 수필집 나는 늙지 않는다, 북인 , 12000>

  

처음 이 수필집을 받고 첫 장부터 끝장까지 손을 놓지 못했다.

특유의 해학과 인간적인 따스함이 수필집 곳곳에서 감지되었다.

그가 누구던가? 미용계 사관학교라던 웰라에서 실력을 발휘하더니

오랜 미용기업이던 일진코스메틱에서 임원을 역임했고,

미용계 최초로 인터넷기업()헤어월드를 창업하지 않았던가.

미용계를 호령하던 그가 회사를 말아먹고(?) 지금은

아흔아홉의 아버지와 아흔넷의 어머니 치매 부모님을 모시며 살고 있다.

치매 부모님을 모시며 살고 있는데 어떻게 늙을 수 있겠는가.

이번 수필집은 그래서 부모님께 바치는 헌사.

때론 박장대소하다가 눈시울을 뜨겁게 달구는 언술을 느끼는 재미가 쏠쏠하다.

  

잔잔한 강물에 비가 내린다/ 직선으로 떨어져/ 동그라미를 그려준다/

부딪치는 모서리가 없어서 부드러운// 물들의 만남/ 물들의 춤/

직선의 물과 동그라미의 물/ 서로를 맞이하는 희열//

우리 서로 싸운 적 있던가// 물로 만나/ 물로 흐를 것이다

<김정조 시집 따스한 혹한 ’, 문학의전당 , 8000>

  

미용을 하면서 시를 쓴다는 것,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김정조 원장은 경기도 안성에서 <예인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1990년에 미용에 입문해서 96년 미용실을 개업했으니 적잖은 삶을 미용과 함께해온 것이다.

그의 시를 읽노라면 삶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을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느낄 수 있다.

이웃의 아픔을 내 마음으로 우려내며 내는 소리가 절창이다.

미용실에서의 고객들과의 대화가 시가 되고 노래가 되었다.

  

오랜만에 손에 들어온 두 권의 신간, 김삼진의 수필집 <나는 늙지 않는다>

김정조의 시집 <따스한 혹한>은 우리 미용계의 품격을 드높여주는 자랑스러운 저작물이다.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이런 책이 우리 미용계에서 많이 읽히고 사랑받았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손톱 다듬는 여자

  

잘록한 허리를 하고

머리 헝클어진 여자

맥주 한 병에 얼굴 붉어진 여자

정성스레 손톱을 다듬네

  

빨강 노랑 색깔도 칠하고

형광등 아래 손톱을 비춰보며

삶은 이렇게 수런거리는 것이라는 듯

쯧쯧 혀를 차기도 하고

책상 밑 먼지도 쓰윽 훑어보면서

잘도 손톱을 다듬네

  

이제 술 냄새 풍기며

그녀의 남자가 들어올 시간

지구 반대쪽에서 그는 걸어오리

찌그러진 걸음걸이로 날아오리

  

나는 그 남자의 여자

잘록한 허리를 하고

손톱을 다듬으며

지구 반대쪽에서 걸어오는 그를

맞으리

  

나는 찌그러진 걸음걸이로 날아오는

술 취한 남자의 여자

쯧쯧 혀는 차지 않고

정성스레 손톱을 다듬으리

형광등 불빛 아래

빨강 노랑 손톱을 비춰보기도 하리

  

마침내 잘 다듬어진 손길로

지구 반대쪽에서

찌그러지게 달려온 그의

등을 긁으리

귓구멍도 파주리

  

<뷰티라이프>2015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