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라이프 칼럼

시 쓰는 즐거움

불량아들 2015. 10. 6. 10:46

Editor’s Letter

 

시 쓰는 즐거움

 

며칠 전, 마음씨 고운 원장이 헤어숍을 이전하여 오픈하는 날이었습니다.

때깔 좋은 홍어회와 막걸리를 앞에 두고 축하 인사를 하며 우리는 흥이 많이 올랐습니다.

그때 기자의 핸드폰이 오두방정을 떨며 온몸을 흔들어댑니다.

핸드폰을 들고 미용실 구석으로 가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니

멀리 호주에 유학 가 있는 하나밖에 없는 예쁜 딸입니다.

반가운 마음이 앞서면서도 무슨 일일까?’하는 걱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

왜 자식들은 자주 전화하지 않을까요?

분명 전화를 했을 때는 용돈이 모자라거나 과외의 돈이 필요할 때입니다.

기자만 하더라도 서울에서 대학교 다닐 때를 돌이켜보면 시골의 부모님께 편지를 쓸 때

항상 마지막 구절에 다름이 아니오라~’라며 용돈을 더 보내줄 것을 강요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전화를 받을 때 반가운 마음이 앞서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인지상정이지요.

 

그러나 그 날의 핸드폰 내용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학교 기숙사에서 음악을 듣고 있다 갑자기 전에 아빠가 썼음직한 시가

생각나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것입니다.

대충 어떤 내용이냐고 물어보니 인사동, 술 마시고 어쩌고 저쩌고 했던 것 같다는 대답입니다.

그러면서 그 시 좀 빨리 카톡으로 보내달라고 합니다.

 

돈 얘기가 아닌 것만도 다행인데 아빠의 시를 이역만리에서 생각하고

다시 읽고 싶다고 하니 아빠 맘이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습니다.

시를 쓰면서 좌절도 많이 하고 기쁠 때도 많았지만 이날만큼은

시를 포기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써 왔다는 것이 그렇게 행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감흥이 사라지기 전에 딸에게 인사동이란 시를 얼른 보내주었습니다.

 

인사동에서/ 낭자하게 술 취한 한 남자/ 무슨 말인가 한참을 지껄이는데/ 가만,/

귀 기울여보니/ . . ./ 미들 거시 못 된다// 웃으며 지나치려다/

내 마음속을 파고드는 저 한 마디,/ 나도 못 믿을 사랑을 해왔구나/

취한 머릿속에 찬바람 휙 지나간다// 어떻게 해야 믿을 사랑이 되나요?/

뒤돌아 물어보려는데/ 술 취한 그 남자 보이지 않네

 

이 시는 기자의 삶이 피폐했을 때 자주 다니던 인사동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썼던 시입니다.

어떤 점이 멀리 있는 딸의 마음에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행기로 열 시간씩 가야 하는 땅, 그리고 그곳 조그만 기숙사 공간에서

문득 기억났다는 것만으로도 이 시는 생명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런 게 시를 쓰는 즐거움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완근(편집국장)alps0202@hanmail.net

 

 

 

어떤 생각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지친 머리를 달랠 겸 찾은 중국의 장가계는 덥고 습했습니다

삶의 경계를 드나드는 장가계는 신선과 도적,

원숭이가 함께하는 이상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징주와 함께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든 이튿날 새벽,

중국 여인의 비명이 간헐적으로 들립니다

부부싸움 끝에 나오는 신음소리 같기도 하고

부부관계 때 내는 쾌락의 비음 같기도 합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는 30여 분 간 간헐적으로 들립니다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의 정체를 알고자 애씁니다

다음 날 새벽, 같은 시간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어제와 다르다면 그 소리의 강도가 좀 더 세졌다는 것뿐입니다

저건 고통의 외침일까, 쾌락의 정점에서 내는 단말마일까?

극대점의 소리에 나의 생각도 극과 극으로 치닫습니다

밤을 하얗게 지새운 나는

그 소리가 부부 싸움의 앙칼짐이 아닌

쾌락의 극치에서 내는 소리였길

오래오래 믿고 또 믿는 것이었습니다

 

<뷰티라이프> 2015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