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일기

401호의 이사

불량아들 2017. 10. 20. 16:04

401호의 이사

 

어젯밤, 아내와 같이 흰소리를 하며 저녁을 먹고 있을 때였다. 초인종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올 사람이 없는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문을 열었다. 대여섯 살 정도 보이는 사내아이와 애기 엄마인 듯한 예쁜 색시가 서 있다. 어디서 본 듯 만듯한 얼굴.

누구시더라?”

의아한 내 물음에

안녕하세요. 401호예요.”

아하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내일 아침 일찍 이사를 가게 되었어요. 그래서 인사를 드리러 왔어요. 뭐해? 인사드려야지.”

꼬마에게 말하자 머뭇머뭇하던 아이가

안녕하세요?”

또랑또랑하게 말한다.

그래, 그새 많이 컸구나. 더 잘 생겼는데

 

며칠 전 아파트 앞에서 만났을 때, 이사 갈 거라는 얘기를 들었었다. 그런데 내일이란다.

이거 섭섭해서 어쩐대요. 이제 정들만 했는데....”

, 저희도 그래요. 저희한테 참 잘해주셨는데.... 그리고 이거, 뭐 별건 아니예요.”

위층 새댁이 부끄러운 듯이 말하며 포장지에 싼 선물상자 하나를 내민다.

이런 걸 다.... 우린 줄 것이 없는데.”

내가 몸 둘 바를 몰라 하자 아내가 어느새 만 원짜리 두어 장을 꼬마아이 손에 쥐어주며,

그래, 이사 가더라도 앞으로 건강하게 잘 커라잉.”

꼬마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아이고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새댁이 눈물을 글썽이며 아이를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간다.

 

우리는 먹던 저녁식사를 다시 시작하며 감회에 젖는다. 우리 집 바로 위층 401호에 이사가 온 지는 약 3~4년 전쯤이다. 이사 후 위층에서 어찌나 쿵쾅거리는 소리가 나던지 저녁이면 신경이 곤두선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잘도 참아냈다.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우리 부부의 성격도 한몫했지만 이웃끼리는 잘 지내자는 게 우리의 평소 신념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뛰어도 너무 뛴다. 이와 함께 떽데구르르 공 글러가는 소리는 참기에 여간 곤혹이 아니다. 결국 아내를 특사로 임명하며 4층으로 올려 보냈다.

 

잠시 후, 401호를 다녀온 아내의 표정이 가관이 아니다. 401호 문이 열리자 두어 살쯤 돼 보이는 듯한 사내아이가 환호성을 지르며 자기 키 만큼이나 뛰어오르는데 그 모습이 앙증맞기 이를 데 없더란다. 사람을 얼마나 좋아했으면 그렇게 펄쩍펄쩍 뛰며 환영하겠느냐는 말이다. 하도 귀여워서 품에 안아주고 왔단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우리는 위층에서 소리가 날 때마다 우리 자식, 손자가 그러려니 생각하고 그래 건강하게 잘 뛰어 놀 거라.’ 흐뭇하게 생각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연하게 몇 번 만나기도 했다. 그때마다 새댁은 미안해했고, 우리는 잘 뛰어 노는 애가 건강한 법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4층 새댁은 명절 때 서너 번 선물을 가지고 왔고 마누라도 애기 옷이며 과자 등을 주러 몇 번 4층에 오가기도 했다. 그때마다 꼬마가 얼마나 예쁘고 건강하게 잘 컸는지 나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하곤 했다.

 

그런 401호가 오늘 아침에 이사를 갔다. 이사 가기 전 고맙다며 선물을 하는 새댁의 마음씨가 요즘 사람답지 않게 곱기 곱지만, 꼬마 녀석의 뜀박질 소리를 못 들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허전해지는 오늘이다.

 

20171020일 아침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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