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정지용- 향수(鄕愁)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워 고이시는 곳. ―.. 내가 읽은 시 2006.04.10
갈대 -신경림- 갈대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내가 읽은 시 2006.04.10
농무 -신경림- 농무(農舞)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조무래기들뿐 처녀애.. 내가 읽은 시 2006.04.10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서정주-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외할머니네 집 뒤안에는 장판지 두 장만큼한 먹오딧빛 툇마루가 깔려 있습니다 이 툇마루는 외할머니의 손때와 그네 딸들의 손때로 날이날마다 칠해져온 것이라 하니 내 어머니의 처녀때의 손때도 꽤나 많이는 묻어 있을 것입니다만은 그러나 그것은 하도나 많이 문질러서 .. 내가 읽은 시 2006.04.10
<긴급공지>여의도 윤종로 벚꽃 번개팅 벚꽃이 난분분 난분분 흐드러지게도 피고 있네요. 참 좋은 계절이랑게요. 요런 날 좋은 사람들과 만나 계절도 감상하고 정다운 얘기라도 나눈다면 금상첨화겠지요. 그리하야 담주 월요일(4월 10일) 저녁 8시에 여의도(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에서 봄맞이 번개팅을 하기로 했당게요. 함 모여서 "잔말리.. 오늘 하루 2006.04.06
울음이 타는 가을 강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 강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 내가 읽은 시 2006.04.05
참깨를 털면서 -김준태- 참깨를 털면서 산 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 내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 번을 내리.. 내가 읽은 시 2006.04.05
설야 -김광균- 설야(雪夜)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 내가 읽은 시 2006.04.05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김광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는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 내가 읽은 시 2006.04.05
안개 -기형도- 안개 1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 내가 읽은 시 2006.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