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죽북-손택수- 소가죽북 -손택수- 소는 죽어서도 매를 맞는다 살아서 맞던 채찍 대신 북채를 맞는다 살가죽만 남아 북이 된 소의 울음소리, 맞으면 맞을수록 신명을 더한다 노름꾼 아버지의 발길질 아래 피할 생각도 없이 주저앉아 울던 어머니가 그랬다 병든 사내를 버리지 못하고 버드나무처럼 쥐여.. 내가 읽은 시 2013.05.16
낯선 곳-고은- 낯선 곳 -고은- 떠나라 낯선 곳으로 아메리카가 아니라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단 한번도 용서할 수 없는 습관으로부터 그대 떠나라 아기가 만들어낸 말의 새로움으로 할머니를 알루빠라고 하는 새로움으로 그리하여 할머니조차 새로움이 되는 곳 그 낯선 .. 내가 읽은 시 2013.05.16
웃은 죄-김동환- 웃은 죄(罪) -김동환- 지름길 묻길래 대답했지요. 물한모금 달라기에 샘물떠주고, 그러고는 인사하기 웃고 받었지요. 평양성에 해 안뜬대두 난 모르오. 웃은 죄밖에, 내가 읽은 시 2013.05.16
열애-신달자- 열애 -신달자- 손을 베었다 붉은 피가 오래 참았다는 듯 세상의 푸른 동맥 속으로 뚝뚝 흘러내렸다 잘되었다 며칠 그 상처와 놀겠다 일회용 밴드를 묶다 다시 풀고 상처를 혀로 쓰다듬고 딱지를 떼어 다시 덧나게 하고 군것질하듯 야금야금 상처를 화나게 하겠다 그래 그렇게 사랑하면 열.. 내가 읽은 시 2013.05.16
바람 부는 날이면-황인숙- 바람 부는 날이면 -황인숙- 아아 남자들은 모르리 벌판을 뒤흔드는 저 바람 속에 뛰어들면 가슴 위까지 치솟아 오르네 스커트 자락의 상쾌 내가 읽은 시 2013.05.16
의자-이정록- 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 내가 읽은 시 2013.05.16
다리-신경림- 다리 -신경림- 다리가 되는 꿈을 꾸는 날이 있다 스스로 다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내 등을 타고 어깨를 밟고 강을 건너는 꿈을 꾸는 날이 있다 꿈속에서 나는 늘 서럽다 왜 스스로 강을 건너지 못하고 남만 건네주는 것일까 깨고 나면 나는 더 억울해지지만 이윽고 꿈에서나마 선선히 다.. 내가 읽은 시 2013.05.16
오십환-심호택- 오십환 -심호택- 머릿장 빼다지에서 훔친 불그죽죽한 오십환짜리는 제법 쓸모가 있었다 애들하고 콩사탕 박하사탕을 물고 마을로 들어오는데 논바닥에 해오라기마냥 엎드린 어머니와 형이 보였다 논두렁에서 암만 기다려도 알은체하지 않고 귀먹은 중마냥 하던 일만 하고 있었다 답답.. 내가 읽은 시 2013.05.16
책 속의 칼-남진우- 책 속의 칼 -남진우- 문득 책을 펼치다 날선 종이에 손을 베인다 얇게 저민 살 끝에서 피가 번져나온다 저릿한 한 순간, 숨을 들이쉬며 나는 깨닫는다 접혀진 책장 곳곳에 무수한 칼날이 숨겨져 있음을 책은 한 순간의 번득임으로 내 머리를 절개한 뒤 어느새 낯선 말들을 밀어넣고 닫혀버.. 내가 읽은 시 2013.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