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안부 봄 안부 봄이 온다고 천지만물이 들썩이고 있다 오래된 벤치 그대 앉아 있던 자리에도 봄 햇살은 추억과 함께 여전하다 봄바람에 실려 오는 꽃향기 멀리 떠나간 그대 꽃의 향기는 코에 남고 사람의 향기는 마음에 남는다 2023년 3월호 자작시 2024.01.04
너의 걱정 너의 걱정 강남에 비 많이 오면 걱정 아파트 상가 늘 때마다 걱정 젊은 애인 때문에 걱정 자식들은 신문에 TV에 요란하게 나타나고 밥 안 먹는 강아지 말 새는 도우미 심장 없는 두뇌가 걱정인, 걱정이 걱정인 너의 걱정 2023년 2월호 자작시 2024.01.04
동물공화국-여우와 호랑이 동물공화국 -여우와 호랑이 여우가 와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사랑스럽지 않은 꼬리 호랑이가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여우는 구름을 핑계 삼아 눈물을 흘린다 호랑이는 잠시잠깐 옛날 생각을 한다 여우의 대성통곡이 가느다란 흐느낌으로 변하고 혼절할 듯하다 호랑이는 제 잘못인양 안절부절 마음을 내려놓는다 늙은 여우 호랑이 혼 빼가며 꼬리를 신나게 흔든다 멀어져 가는 여우 쳐다만 보는 호랑이 동물공화국이 흔들린다 2023년 1월호 자작시 2024.01.04
동물공화국-고양이 나라의 쥐 동물공화국 -고양이 나라의 쥐- 고양이 닮은 쥐 한 마리 고양이 나라에 와서 벼슬살이를 한다 문재를 뽐내며 고양이들을 백안시 번들번들하게 노닌다 그러나 그는 쥐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척 번들거리는 눈알을 굴린다 고양이 몇이 그의 실체를 아는 것 같았으나 쥐는 개의치 않았다 몇 번의 검은 뭉치가 오갔고 의심하는 고양이들도 조용해졌다 쥐의 힘이 더 세졌다는 소문만 돌았다 2022년 12월호 자작시 2024.01.04
환절기론 환절기론 봄과 여름 여름과 가을 가을과 겨울 겨울과 봄 사이 익숙해지지 말라고 나태하지 말라고 정신을 환기하라고 계절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환절기 2022년 11월호 자작시 2024.01.04
가을 가을 긴 생머리 소녀가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달려가고 있다 가을 햇살이 그 뒤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고 있다 베어진 풀에게서 소녀의 머리 냄새가 났다 2022년 10월호 자작시 2024.01.04
섬 섬 육지에서는 보이지 않는 외딴 섬 골짜기마다 집이 두어 채 날이 밝으면 섬만 외로운 것이 아니라 구름이 외로워서 사람이 외로워서 지나가는 여객선은 숨을 죽였다 2022년 9월호 자작시 2024.01.04
개미 개미 도레미 도레미 많은 음표들이 떼 지어 분주하다 도레미 도레미 일렬을 이루다가 어떤 음표는 갑자기 시로 불쑥 솟았다가 황급히 미로 뒤돌아오고 다른 음표는 갈팡질팡하다가 저 밑 파로 떨어지기도 한다 두 음표가 얽혀 쌍음이 되기도 한다 바람소리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2022년 8월호 자작시 2024.01.04
지렁이 예찬 지렁이 예찬 나 죽으면 토룡될란다 미끈한 맨몸으로 밭 일구며 끈끈한 체액으로 땅 살찌우리 햇볕 들지 않는 언 땅이라도 체온으로 온기 가득 채우리 그리하여 푸성귀 만발할 때 온 몸 비틀며 밖으로 나와 허기진 병아리의 먹이가 되리 새벽에 홰를 치며 밝은 날을 세상에 알리는 닭의 모이가 되리 2022년 7월호, 창간 23주년 기념호 자작시 2024.01.04
담쟁이 넝쿨 담쟁이 넝쿨 담 넘자 담 넘자 청록파의 전사 회색 벽을 청록으로 동화시키고 있다 그 위세 수나라 100만 대군을 물리친 을지문덕이다 보란 듯이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청보리 푸른 들녘 아버지 종아리 울퉁불퉁 낫질하고 계신다 부하들 보란 듯이 푸른 들녘 향해 호령하신다 한팔에 다 안으신다 온 가족이 부하다 2022년 6월호 자작시 2024.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