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245

같이 울다

같이 울다 지하철 내려가는 계단 할아버지 한 분이 철 손잡이를 잡고 조심조심 내려오다 허리를 부여잡고 쓰러진다 고통이 얼굴에 퍼지고 입으론 짐승 같은 소리를 낸다 지나가던 할머니 한 분이 급히 달려와 도와주며 할아버지를 가만히 보시더니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허리통증으로 119에 실려 간 적이 있던 나도 따라 울기 시작했다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날이었다 2022년 5월호

자작시 2024.01.04

M의 외출

M의 외출 M은 새벽에 일어났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거실로 나오자 창밖으로 희미한 불빛이 스며들었다 검은 외투를 걸치고 아파트 문을 나섰다 고고한 달빛이 내리쬐는 돌담 위에서 웅크리고 있던, 고양이 한 마리가 빤히 노려보았다 길 위를 새벽바람이 뒹굴며 지나갔다 몇 번의 심호흡이 M의 심장을 자극했다 낚싯줄과 물고기의 팽팽한 대치처럼 그는 여명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모든 게 부질없는 짓, 속으로 되 뇌이며 뒹구는 바람을 앞서 걸었다 마침내 골목 끝에 다다랐으나 골목은 또 다른 골목으로 이어졌다 좁은 골목 어둑한 허공 속에서 침을 한번 삼키고 깃을 세운 야생마처럼 가던 길을 되돌아서 달렸다 고양이 두어 마리가 혼비백산 담 위를 넘었다 동이 트려면 아직 멀었다고 M은 생각했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

자작시 2024.01.04

생각을 멈추다

생각을 멈추다 단 삼 일만의 생 느껴야 할 시간도 버려야 할 욕심도 없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가을바람에 혼령은 자유롭던가 아가아가 뻐꾹새만 목 세워 운다 지나온 세월이 유수 같구나 모레면 한 세기 세월을 잡을 올가미는 없는가? 마른 눈물만 땀으로 흐르는데 먹구름 속에도 푸르름은 보이는 듯 노랑 꾀꼬리 까불어 쌓는다 삶과 죽음이 시공을 넘나드는 생각을 멈춘 여기 이곳 2021년 12월호

자작시 2024.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