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몇 쉰 몇 쉰 몇을 지나면서 알겠네 오월의 보리는 왜 이리 새파란지 수박 속은 왜 새빨갛게 익었는지 황금들녘의 벼 익어가는 소리 보이네 저녁노을이 빚는 색깔 들리네 쉰 몇이 되니 알겠네 신작로의 자갈은 왜 자동차 바퀴에 튕겨나가는지 파도는 왜 성을 내는지 너는 왜 나에게 보이지 않.. 자작시 2019.08.26
창조자 창조자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고이 자고 있던 아내가 ‘뽕’ 한 세계를 생산했다 잠 속에서도 얼굴엔 부끄러운 홍조 귀여운 세계를 창조하고 아내의 몸은 이내 가벼워졌다 한순간 아내는 가벼운 조물주가 되었고 나는 동승을 기다리는 설레는 꼬마가 되었다 <뷰티라이프> 2018년 9월호.. 자작시 2019.08.26
콩을 까다 콩을 까다 시골의 어머니께서 콩을 한 자루나 보내셨습니다 반쯤 취한 채 들어온 아들은 자고 있는 아내를 깨워 함께 콩을 깝니다 알콩달콩 콩을 깝니다 콩 한 알이 또르르 마룻바닥을 굴러 갑니다 취한 아들은 콩을 잡으려다 콩콩콩 바닥을 구릅니다 아내가 눈을 흘기며 크게 크게 웃습.. 자작시 2019.08.26
한낮 한낮 격렬한 섹스 후의 나른함 같은, 유월의 햇살이 느리게 땅을 달구고 있는 사이 개미들은 식량을 물고 분주하다 게으른 나무는 옆 나무에게 눈을 흘기고 늙은 선풍기는 앓는 소리를 내고 있을 때 모습이 보이지 않는 닭 울음소리가 길게 울렸다 시집 속의 글자들은 입속으로 굴러들어.. 자작시 2018.07.05
나도 대중시를 써야겠다 나도 대중시를 써야겠다 이른 저녁을 먹습니다 아내와 집 뒤 큰 절로 산책을 나갑니다 아름드리 느티나무 몇 그루와 교복을 입은 소녀가 나올 것 같던 골목길을 헐어내고 큰 절은 위용을 뽐내고 있습니다 큰절이라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큰 절에서 공양한 무료 커피를 뽑아들고 밤 하늘, .. 자작시 2018.07.05
부고 부고 어느 날 갑자기 나 죽거든 봉투에 꽃씨나 각자 넣어주오 민들레나 자운영 봉숭아 홀씨 되어 툭, 세상 어느 한자리 내려앉아 꽃물 들이고 있으리니 어느 날 갑자기 부고 오는 날 봉투에 꽃씨나 넣어주오 <뷰티라이프> 2018년 4월호 자작시 2018.07.05
그림자 찾기 그림자 찾기 그는 무엇인가에 취한 것처럼 보였다 외눈이었으며 한쪽 눈으로 세상을 다 집어삼킬 듯했다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으면서도 옷매무새를 고쳤다 오래된 잡기장을 찢어버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렁그렁 쇳소리 나는 울음을 토했다 아니 노래였다 눈이 땅에서 하늘로 .. 자작시 2018.07.05
직업 의식 직업 의식 장의사가 말했다 -혹시 죽으실 일 있으면 연락주세요 -죄 지으시면 바로 전화주세요 이는 어느 경찰서 경목실장의 말씀 목소리를 잃은 흘러간 유명 여가수처럼 미용사가 말했다 -미안해요, 요새는 언밸런스가 대세라서요...... <뷰티라이프> 2018년 2월호 자작시 2018.07.05
동심 파괴 동심 파괴 유치원에 다녀온 꼬마가 말했다 -엄마 내 짝꿍 다은이와 결혼할거야 -결혼은 20년 후에나 하는 거란다 -20년 기다리면 되지 -20년 후에 니 짝꿍은 돈 많은 남자랑 결혼할걸 크리스마스 이브 날 -산타 할아버지, 나는 나쁜 아이라 크리스마스 선물 받을 수 없지요? 다섯 살 난 유민이.. 자작시 2018.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