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빨래 얼마를 뒤엉키고 방망일 얼마나 맞았느냐 이제 깨끗하게 화해하고 가을 양지쪽에서 환하게 펄럭이고 있는 빨래를 보며 나, 짠하게 웃는다 얼마를 뒤엉키고 얼마를 껴안아야 너처럼 환하게 웃을까 나, 짠하게 운다 <뷰티라이프>2012년 11월호 자작시 2013.01.25
이별 후 이별 후 쉿, 소리내지마 봄이 오는 소리 꽃이 지는 소리 강물은 넘치네 비 오는 소리 단풍 드는 소리 그리움 몰려가는 소리 쉿, 소리내지마 버스는 소리 없이 떠나네 들키지 않게 떠나네 쉬 떠나네 쉿쉿쉿, 언강 풀리네 <뷰티라이프>2012년 10월호 자작시 2013.01.25
맛있는 풍경 맛있는 풍경 팔월 늦여름 잡풀이 우거진 아파트 공원 후미진 곳 남녀 한 쌍이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하더니 방금 들려오는 소리가 지렁이 울음소리네 아니네 하며 한바탕 웃음바가지를 쏟아내더니 이내 한 입술이 된 두 사람 무성했던 풀벌레 소리 잠시 멈추고 바람도 휘돌아가네 <뷰티.. 자작시 2013.01.25
면도를 하며 면도를 하며 아침에 일어나 면도를 한다 밤새 충전해 두었던 면도기를 얼굴에 대자 거목 쓰러지듯 우렁찬 소리를 내는 녀석 시원한 삶의 현장 어제 아침 면도를 하려다가 앓아누운 할머니보다도 더 병약한 소리를 내는 전기면도기를 탓했었다 초벌 모내기 논만큼 띄엄띄엄 깎였었다 며.. 자작시 2013.01.25
상처, 나다 상처, 나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랬는데 오른발이 다친 걸 왼발이 먼저 아네 상처는 오른발이 났는데 신음은 왼발이 먼저 하는 이치 목발 하나 짚고 도 닦는 한 사내 세상의 절반은 아파하는 자의 몫, 나머지 반절은 그대들의 것 <뷰티라이프>2012년 7월호 자작시 2013.01.25
봄날 오후 봄날 오후 살아 온 시간보다 살아 갈 시간이 적은 생각 많은 봄날 오후 느으린 음악 소리, 내 생도 저렇게 늘어지려니 저 햇살 늘어지듯이 책상 위에선 똑딱, 똑딱 시계 소리 꽃은 또 지누나, 저 소리 맞춰 소나기를 기다리는 건 지친 꽃잎만이 아니란 걸 나 봄날 오후 문득 깨닫네 <뷰티.. 자작시 2012.07.26
장례식장에서 장례식장에서 낭자한 울음소리 이승을 넘어 저승까지 넘나들겠네 대치할 것 찾을 수 없는 흐드러진 울음소리 저승을 넘고 돌아 구천을 떠돌겠네 빈 몸으로 왔다가 남루로 가는 울음소리 가득한 장례식장 눈물이 쌓여 마음이 하나 되는 곳 망자여, 모두의 허물, 모두의 굴레 모다 모다 껴.. 자작시 2012.07.26
거울 거울 흐트러진 자세 하나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빈틈없는 저 묘사 그러나 저기 왼쪽 눈을 오른쪽에 오른쪽 눈을 왼쪽에 놓고 시치미 딱 떼고 있는 <뷰티라이프>2012년 4월호 자작시 2012.07.26
눈 내리다 눈 내리다 떠나 온 사람, 보낸 사랑, 삶은 켜켜이 운다 시방 눈 내리고 잊어버린 사랑만큼 눈발은 난분분 난분분 흩날리다 내리는 눈 보며 강아지는 짖고 대나무는 삶의 무게를 털어내다 떠나 온 사랑, 보낸 사람, 시방 눈발은 난분분 난분분 흩어지다 <뷰티라이프> 2012년 3월호 자작시 2012.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