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일기 37

자궁 검사인데 젖가슴을 왜 보제?

자궁 검사인데 젖가슴을 왜 보제? 아내와 나의 대화는 80% 이상이 쓰잘디없는 얘기다. 소설이 주제만 집중해서 쓰면 재미가 없고 곁가지를 잘 버무려 써야만 훌륭한 소설이 되듯이 삶도 마찬가지리라 위안을 삼는다. 오늘도 산책하다 아내가 들려준 얘기. 오래 전, 아내의 선배 언니 A와 B가 산부인과에 갔단다. 나도 잘 아는 언니들이다. 자궁 검사 후 의사가 앞에 앉아 있는 A언니에게 옷을 가슴 위까지 끌어올리라고 말했다. A언니는 아무 생각 없이 옷을 올려 젖가슴이 보이도록 했다. 의사는 유방을 유심히 본 후 내리라고 말했다. 두 언니는 병원을 나와 서로의 검사에 대해 말을 나눴고, A언니는 의사가 가슴을 보이라고 해서 부끄러웠다는 얘기를 했다. B언니는 갑자기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자기한테는 그런 일을 ..

부부일기 2020.06.03

1일 1닦

1일 1닦 청소기가 고장 났다. 아내는 한꺼번에 흡입과 물걸레 청소가 함께 되는 L사의 고가 청소기 구입을 주장하다가 생각을 바꿨는지 물걸레청소기, 진공청소기, 스팀청소기를 각각 하나씩 3개를 샀다. 그러곤 시험 삼아 써보더니 연신 좋아죽는다. 가격 대비 만족도 최고라고 연신 엄지척을 해 보인다. 하루에 한 번씩 청소하는 ‘1일 1닦’을 실천할 곳이라고 큰소리치더니 매일 약속 이행 중이다. 청소하기가 재미있어졌다고 한다. 문제는 1일 1닦만 하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 프로야구를 중계하는 저녁에도 여지없이 청소 삼매경이다. ‘1일 1닦’을 넘어 ‘1일 3닦’을 며칠째 수행 중이다. 나는 책읽기를 하거나 텔레비전을 볼 때 집중해서 봐야 하는 편이다. 특..

부부일기 2020.06.03

벌레는 무서워

벌레는 무서워 저녁을 먹고 아내와 동네 한 바퀴 산책하고 늦게 들어왔다. 텔레비전에서 영화 한편을 감상하다 소파에서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눈을 떠보니 새벽 2시다. 아내는 안방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 사람이 깨워서 같이 들어갈 일이지.’ 속으로 되새김질하고 있는데, 핸드폰 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고 천지를 진동한다. ‘또 어떤 위인일까?’ 술만 취하면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하는 시인이 몇 있다. 그런데 핸드폰에 뜬 이는 ‘이쁜각시’다. ‘안방에 있을 텐데 핸드폰이라니, 장난이겠지’하면서 핸드폰을 받자, “까아악~ 여보 여보. 문 앞에 발 많이 달린 벌레가 붙어 있어.” 아내는 벌레라면 질색이다. 때려잡지도 못 한다. 실은 나도 벌레는 무섭다. 베란다를 통해 파리약을 건네주며 뿌리라고 해도 못 ..

부부일기 2020.06.03

피자는 아무나 먹나

피자는 아무나 먹나 광주에 사는 처제에게는 딸이 하나 있고, 그 딸이 나를 무척 잘 따른다. 이모부인 내게 하루에 두서너 번은 전화를 한다. 무슨 중요한 용무가 있어서 하는 전화가 아니다. 다짜고짜 전화해서는, “이모부 날씨 좋지요?” “그래 산책하기 좋은 날이야.”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핸드폰을 뚝 끊는다. 산책하기 위함이리라. “이모부 오늘 기아 이길 것 같아요, 질 것 같아요?” “아롱이가 집을 나갔어요.” “점심 때 무엇 드셨어요?” 질문도 다양하다. 오늘도 전화가 왔다. “이모부 피자 시켜주세요.” “응, 그런데 지금은 바쁜데...” 뚝 끊기는 전화. 핸드폰 진동이 채 가시지 않은 조금 후, 다시 오는 전화. “아직도 바쁘세요?” “응...” 또 끊기는 전화. 10분 후, “지금도 바쁘세요?” 처..

부부일기 2020.06.03

잔재주 부리지 마세요

잔재주 부리지 마세요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웠다. 옆에 누워 있던 아내가 몸이 뻑적지근하다고 은근하게 말한다. 내 손은 보통 사람들의 손보다 뜨겁다. 그래서 평소 마사지를 해주면 좋아한다. 아내의 귀를 마사지 해준다. 정성껏 힘을 주며 꾹꾹 주물러준다. 아내는 시원하다, 실력이 많이 늘었다, 꼬맹맹이 소리로 의욕을 부추긴다. 그러나 이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3분도 채 안 됐는데 힘이 든다. 그렇다고 코맹맹이 소리까지 하는데 그만 둘 수 없다. 손가락 힘을 빼고 빠르게 빠르게 터치만 한다. “잔재주 부리지 마세요” 아내의 한 마디에 손가락에 힘을 다시 팍팍 줄 수밖에 없는 남편이다. (2020년 5월 11일)

부부일기 2020.05.19

나이와 건망증

나이와 건망증 봄볕이 따뜻하다. 여지없이 아내와 나들이 나섰다. 한참을 걷고 있는데 탑같이 생긴 꽃이 참으로 탐스럽다. “이쁘기도 하다. 이 꽃 이름이 뭘까?” “꽃 이름 검색하는 것 있잖아. 검색해봐.” 핸드폰을 들이댄다. ‘루피너스’ “아하, 루피너스!” 우리 부부는 동시에 외친다. 그러곤 깔깔깔 웃는다. 벌써 한 달 새 서너 번은 검색했나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호기심과 비례하고 건망증과 반비례하는 것이리라. 2020년 4월 29일

부부일기 2020.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