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넘기며 달력을 넘기며 오랜만에 책상 앞에 앉습니다 방안 가득 글자들의 수런거림 가슴이 떨려 옵니다 이런 정겨움을 왜 그토록 멀리 했던가 책상 한쪽 켠 우두커니 있는 달력을 봅니다 때로는 빨간 줄로, 검은 줄로 죽죽 그어져 있는 날짜를 헤아리며 1, 2월을 3, 4월을 7, 8월을 넘깁니다 날짜들는 그냥 넘어가.. 자작시 2006.04.18
시골에서 온 전화 시골에서 온 전화 늦은 시간 시골에서 어머니 전화가 오네 오늘 장팔리 아주머니가 돌아가셨다 하네 멀쩡하게 산 두렁에 있는 밭의 비닐을 거두다가 어지러워서 병원에 갔다가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다 하네 그 양반 밭에 올 때마다 물 마신다며 들어와 객지에 있는 딸 자랑 해가 지도록 .. 자작시 2006.04.18
밤비 밤비 이것은 동학군의 나팔소리 삼일절의 만세소리 육이오의 따발총소리 낭자하게 소리의 역사를 아느냐 묻더니 이윽고 오뉴월 산사 스님의 목탁소리 시방은 시골 시악시 젖무덤 크는 소리 자작시 2006.04.18
우리 시대의 사랑 우리 시대의 사랑 잊기 위해 오늘도 술집을 찾는다 찰랑거리는 술잔으로 너를 잊으리라 다짐하지만 소주잔 속 소주의 투명함만큼이나 더욱 또렷해지는 네 모습 -컴퓨터 화면 지우듯 그렇게 쉽게 잊을 수는 없을까- 잊어야지, 잊어야지 다짐하며 오늘도 술집을 찾는다만 절망의 깊이만큼 .. 자작시 2006.04.18
우울한 날의 기억 우울한 날의 기억 세월은 나를 어느 새 이 자리에 앉혔다 어언 반 세기 지나온 길을 되새김질할 시간도 없이 그렇게 정신없이 떼밀려 왔다 계절은 또다시 나를 지나온 만큼 저 멀리로 데려갈 것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리라 떼밀리지 않고 죽음 앞의 그날까지 이제 헤아리며 가리라 우울한 .. 자작시 2006.04.18
허무한 사랑 허무한 사랑 내 사랑은 오래 갔네 오래 오래 익은 사랑 단단한 바위처럼 굳은 줄만 알았더니 흐르는 물처럼 끊일 줄 몰랐더만 허망하여라 내 사랑 이제 자취를 찾을 수 없네 내 사랑은 그리하였어라 바위인 척하다가 물인 척하다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렸구나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이 봄에 들판을 서성.. 자작시 2006.04.18
나는 부활을 꿈꾼다 나는 부활을 꿈꾼다 늦은 시간, 늦은 나이에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왜 나는 사는 걸까? 지금 이 시간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 어떤 표시가 날까 기부금을 주는 고아원도 없고 라면 한 박스 사 주는 양로원도 없다 고향을 떠나는 친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는 더욱 없다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 누가 .. 자작시 2006.04.18
삶 삶 사람 사는 일이란 모두 똑같아서 태평양 건너 아메리카에서도 서로 말다툼을 하고 바다 건너 일본에서는 자리 싸움을 한다 서울에서는 생사람을 매장하고 부산에서는 사이좋던 부부가 남남이 된다 사람 사는 일이란 모두 똑같아서 미국에서도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가슴 아픈 일들이 많이도 일.. 자작시 2006.04.18
2월에 2월에 봄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혹독한 겨울을 지나 2월의 언저리를 더디게 넘어야만 봄은 오지요 누구도 보고 싶지 않았다 누구도 그리워하지 않았다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떠났던 고향을 다시 찾아오는 방랑객처럼 머뭇머뭇 잦아드는 봄의 자취 2월에, 할머니는 대청머루에 앉아 졸고 있.. 자작시 2006.04.18
봄날 봄날 3월의 햇살은 겨우내 신음하던 시냇물을 노래 부르게 하고 나비의 날개에 힘을 주었다 대지 속까지 녹아들어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까지 놀라 깨어나게 했다 저기, 저 팔랑거리며 나부끼는 봄의 자취 버선발로 마중 나온 3월의 세상은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온통 시끌벅적 시끌벅적 1999.3 자작시 2006.04.18